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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도, 신속성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 고민이 우선"

2017사건기자 인권·생명 존중 세미나

김달아 기자  2017.09.15 14: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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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간 한국에서 22만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인 10만명 당 자살자는 26.5명(2015년), OECD 평균의 2배에 달한다. 한국은 2003년부터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언론 보도가 자살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또 그 반대로 언론이 자살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언론은 자살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14일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2017사건기자 인권·생명 존중 세미나'에서는 기사를 쓰기 전 이 보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이날 세미나에는 전국 사건기자 5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1세션 '생명존중 저널리즘을 위한 우리의 역할'에서 발표를 맡은 이창수 세계일보 기자는 자살이란 팩트를 기계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이 기사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초부터 자살예방 관련 기획보도를 해온 이 기자는 "취재하면서 만난 전문가들은 자살보도만 없어도 자살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관련 보도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방아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기자 입장에선 써야할 때가 있다. 유명인뿐 아니라 송파 세모녀, '아픈데 출근해라' 유서 남긴 집배원이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현장에선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기사화되곤 한다"며 "기계처럼 무감각해지라고 요구하는 언론사의 수습교육 시스템, 다른 곳이 쓰면 어쩔 수 없이 써야한다는 기자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 보도 최소화 △선정적 표현 자제 △자살 관련 상세 내용 최소화 △유가족 등 주변 사람 배려 △자살 미화, 합리화 자제 △사회적 문제제기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 이용 금지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 홍보 △자살 예방 정보 제공 △인터넷 자살 보도 신중 등 9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언론보도를 통한 자살 예방을 위해 지난 2013년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함께 제정했다.

 

이 기자는 "권고기준은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사건기자들은 자살보도를 단독 한 꼭지 수준으로만 여긴다. 이 기사를 쓰는 이유, 보도가 사회에 끼칠 영향, 후속보도 할 만한 내용인지부터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무분별한 언론보도가 모방자살을 부추긴다고 지적하면서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를 당부했다. 홍 센터장은 "자살한 유명 연예인 1인당 모방자살사망자가 평균 600명"이라며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율(2015)은 7%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홍 센터장은 "한 연예인이 번개탄으로 자살하자 언론은 그 방법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후 4년간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이 32배 증가했다"며 "자살보도를 자제해달라는 게 아니라 자살 방법을 너무 생생하게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홍 센터장은 "'빚 500만원 때문에 자살' 처럼 원인과 결과를 예단하는 기사가 많다. 마치 '이런 환경이 되면 자살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며 "자살 예상사업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에서 권고기준을 지킨 제대로 된 기사 하나가 자살률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여년째 자살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자살하는 이유는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언론은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자살 방법도 너무 상세하게 보도한다"며 "내 기사로 주변 사람이 목숨을 끊는다면 그 기사를 쓸 수 있겠나. 자살보도는 가급적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기자는 "핀란드는 자살을 줄이기 위해 범국가적 대책을 시행하면서 '자살'이란 단어를 금기시했다. 언론도 자발적으로 이를 따랐고 자살관련 보도를 최소화했다"며 "우리도 자살 사건을 중요한 기사로 취급하지 않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살보도에 더 신중해야 하고 자살에 비판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세션에서는 <정신질환 보도의 인권적 접근>이 다뤄졌다.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는 "많은 사람이 '범죄자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기자들부터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와 어울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 기자는 "언론은 정실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2011년 '정신분열병'이란 병명을 '조현병'으로 개정한 것도 사회적 편견과 비인권적인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 였다"며 "한국기자협회와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이 지난 7월부터 '정신건강 언론준칙'을 만들고 있다. 편견과 차별을 줄일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은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2011)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일반인(1.2%)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하지만 언론은 정신질환자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이들의 비정상적인 행위로 원인을 몰아간다. 선정적, 폭력적인 묘사로 대중의 공포심을 극대화한다"고 꼬집었다.

 

조 과장은 "언론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편견을 확산하고 있다"며 "정신건장 보도준칙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기자들의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설운영 정신장애정책추진연대 대표는 정신질환자를 예비범죄자로 연관짓는 보도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설 대표는 "조현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며 "범죄는 질병으로만 일어나지 않고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는데, 언론은 조현병이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한다"고 지적했다.

 

설 대표는 "언론이 사회질서교란자로 지목한 정신질환자들은 낙인과 차별, 불평등을 겪고 있다"며 "우리사회와 언론은 이웃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