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 출연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가운데 당시 고위간부였던 고대영 KBS사장과 변석찬 KBS이사가 이 같은 ‘언론장악’ 시도에 연루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3일 성명을 내고 “그(고대영 사장)가 보도본부장으로 있던 2011년 2월8일 <시사기획 창> ‘국가인권위원회’ 편의 윤도현 씨 내레이션이 급작스럽게 무산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가 보도책임자였고, 담당 기자의 해외출장 하루 전에 출장을 반려해 국가인권위 관련 취재를 방해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도현 씨는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지난 11일 밝힌 조사결과에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게 확인됐는데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고 사장이 이와 관련해 그의 내레이션 출연을 막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KBS본부는 윤도현 씨의 출연무산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성명에서 “제작 실무진에 따르면 이번 프로그램에서 윤도현 씨를 내레이터로 섭외한 것은 윤 씨가 마침 ‘인권위원회 홍보대사’인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보대사가 직접 ‘인권위원회’와 관련된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맡아준다면 프로그램의 취지나 시청자에 대한 효과 면에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측은 윤도현 씨가 ‘내레이터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고, 특히 시사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적이 없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불가를 고집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유가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방송 관계자라면 누구나 안다”며 “윤도현 씨는 KBS에서 다수의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한 적이 있는 베테랑 진행자다. 또한 KBS와 MBC, SBS 등에서 다수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맡은 적이 있다. 이 가운데는 '탈북청소년 문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시사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다”고 부연했다.
당시 KBS본부는 사측이 반대하는 이유와 관련 “지난 정권의 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관’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추측은 윤 씨에 대한 섭외가 이미 끝나고 ‘종편’과 ‘더빙’ 작업만을 남긴 시점에 뒤늦게 사측 제작 간부들이 부랴부랴 반대를 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확신을 갖게 한다”고 적시했다. 이번 국정원 개혁위 발표와 연관 지으면 당시 출연무산은 ‘선입관의 결과’가 아닌 ‘블랙리스트의 작동’으로도 볼 수 있다.
KBS본부는 KBS 라디오센터장 등을 역임한 변석찬 KBS이사가 당시 라디오 PD들의 보복성 지역발령에 관련됐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변 이사는 구 여권추천을 받은 KBS이사회 다수이사 중 하나다. KBS본부는 2010년 초 김인규 KBS사장의 ‘새노조(언론노조 KBS본부) 탄압’을 언급하며 “새노조 라디오 조합원들에 대한 축출이 이어졌다. 서울과 지역국 순환근무 규정을 바구면서까지 MB주례 방송 반대 투쟁 등에 적극적이었던 고참 PD들을 지역으로, 새노조 공추위 라디오 간사는 비제작부서로 강제로 발령냈다”며 “라디오 PD들이 보복성 지역 발령을 받는 과정에서 (변 이사가) 당시 담당 부장이었기에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KBS본부는 2010년 3월 ‘일방적 라디오PD 지역발령 등 부당보복인사를 철회하라’는 부제의 성명을 당시 낸 바 있다. KBS본부는 당시 성명에서 라디오PD들에 대한 인사발령과 관련 “발령대상자 5명 중 4명이 KBS본부 조합원이고 그나마 1명도 기존노조를 탈퇴한 PD다. 특히 그 가운데 1명은 전임 관제사장이 들어온 뒤 KBS를 지켜내기 위해 위원장 후보로 나섰던 사람이고 또 다른 2명은 그를 물심양면 도운 사람이다. 일신의 안위보다는 공영방송 KBS를 위해 험한 길, 바른 말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본부 안에서는 적어도 현 라디오본부장보다는 일 잘하고 신망이 두터운 PD들이기도 하다”며 “애시당초 이종만 라디오본부장이 ‘지역라디오 활성화’의 대안과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은 채, 어느날 갑자기 졸속적이고 즉흥적인 지역순환전보 개정안을 내놓았을 때부터 우리가 예측했던 그대로”라고 밝혔다.
아울러 “공영방송 정신을 가장 투철하게 몸으로 행동한 라디오PD들이 그 대상이 됐다. 프로그램이야 어찌되건 말건 이른바 눈엣가시같은 라디오PD를 보복 인사내는 것은 결국 KBS 몰락의 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KBS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방송 출연자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국정원 개혁위 발표에 대해 “충격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며 후속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중 KBS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좌편향 방송PD 주요 제작활동 실태’ 파악 국정원에 지시(2009. 9) △청와대 홍보수석, ‘KBS 조직개편 관련 좌편향 인사 여부’ 파악 국정원에 지시(2010. 5) △국정원 ‘좌파 연예인 대응T/F’의 ‘특정 라디오 제작자 지방 전보발령 유도’(2010. 4) △‘KBS 등 공영방송에서 정치성향 문화・예술단체 출신 방송인 퇴출 유도’ 등 블랙리스트 방송인 사찰·탄압 등과 관련 의혹의 진상을 파악할 자체 조사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KBS본부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사찰탄압 공작은 내부자들이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며 “국가정보원도 추악한 과거와 단절하고 적폐를 청산하고자 한다면 당장 추악한 방송장악 문건들을 모두 공개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