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2011년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공영방송사 구성원들과 언론시민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최근 KBS와 MBC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상황에서 고대영 KBS사장을 소환해 사건을 철저히 재수사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고 사장은 도청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거론돼 왔다.
전국 240여개의 언론시민단체가 연대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과 관련 “고대영 사장이 피고발인에서 피의자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한다”며 “검찰은 즉각 고대영 사장을 소환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해당 사건을 “경찰과 검찰이 6년 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언론 적폐 사건”으로 규정하며, “이번에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못 다한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고발인인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조사에 참여하기 직전 열렸다. 성재호 본부장은 “6년 전에 밝혀졌어야 할 사안”이라며 “늦었지만 검찰이 모든 관련 인물들을 소환해 진실을 밝혀주길 바란다. 저 역시 오늘 검찰에 출두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은 지난 2011년 6월 당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KBS의 수신료 인상 문제를 두고 민주당 비공개 회의록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언급하며 불거졌다. 민주당이 도청의혹을 제기, 경찰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도청 당사자로 지목된 장 모 KBS기자를 세 차례 소환조사했지만 의혹만 남긴 채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 특히 장 모 기자는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자신의 휴대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의원은 “민주당이 작성한 문건을 (KBS가 아니라) 제3자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했고, KBS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방식의 도청은 없었다”는 입장을 냈다. 고대영 당시 보도본부장이 장 기자에게 휴대폰을 선물한 것을 비롯해 여러 의문이 남았지만 결국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되면서 의혹만 키운 채 사건은 무마됐다.
검찰의 이번 재수사는 사건 발생 6년 후인 지난 6월 뉴스타파가 한 의원이 공개한 문건이 KBS에서 만든 것이라는 임창건 당시 보도국장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비롯됐다. 뉴스타파 보도에서 임 전 국장은 ‘KBS가 관련 문건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회사 업무 성격상 대외 업무는 고대영 보도본부장이 관장했다’라고 발언했다.
이후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지난 6월 고대영 당시 KBS보도본부장, 임창건 당시 KBS 보도국장, 이강덕 당시 정치부장, 김인규 당시 KBS사장, 도청 당사자로 지목된 장 모 KBS기자, 자유한국당 한선교 의원 등 6인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온 만큼 재수사를 하라는 요구였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남부지검 공안부에 배당했고 고발 40여일 만에 재수사에 착수한 것이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총파업에 들어간 KBS 구성원들 역시 이번 사건의 재조사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7일 총파업 4일째를 맞은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은 이날 서울 여의도 KBS신관 계단에서 집회를 열고 이 사건과 관련해 발언했다.
앞서 KBS기자협회는 지난 6월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 KBS기자협회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정필모 기자)’를 출범하고 자체 진상조사에 들어간 바 있다.
박종훈 KBS기자협회장은 “저희들이 감사실이나 검찰이 아니라 도청 의혹 조사가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그래도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며 “현재 목표는 다음 주 초 결과를 발표하는 거다. 진실 실체에 상당히 많이 가 있기 때문에 한 발 더 나아간 결과를 볼 수 있을 거 같다”고 밝혔다.
이번 진상조사에 참여 중인 허효진 KBS기자는 “(기자생활을 한) 지난 4년을 정리하면 KBS에 대한 국민의 외면을 인정내지 체념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촛불집회 등 현장에서 좀 억울하기도 했고, 내가 잘 하면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도 했는데 민주당 도청 사건을 보면서 뿌리가 참 깊구나 싶었다”며 “언론이 정치권과 유착했다는 의혹만으로도 크게 아팠고, 신뢰도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번 재수사로 마무리가 돼 KBS가 앞으로 어떠게 나아가야 될지 생각들을 나누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수사와 관련 남부지검에 출입하는 김수연 KBS기자는 “최근 검찰 인사가 있었고 새로운 차장검사가 업무보고를 하는데, 처음 볼 때는 거기 ‘도청사건’이 빠져 있었다. 검찰 입장에서 중요하게 안 보였던 거 같다”면서 “파업 이후 다시 남부지검에 알아봤을 때는 검찰 기류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전면 재수사라고 한 것도 충분히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어보였고 새로운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진술이 증거로 채택된다면 사건 실체가 검찰 수사로 밝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취재를 통해 갖게 됐다”고 했다.

KBS기자협회의 자제 진상조사와 관련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필모 KBS기자는 “고위 간부들일수록 변명을 하거나 조사 자체를 거부해 쉽지 않은 과정이다. 복수의 확인이 아직 필요한 부분이 있어 계속 확인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지금 밝힐 순 없지만 다음 주 정도에는 1차 발표를 할 수 있을 걸로 본다”고 했다. 이어 “임 전 국장이 오리발을 내밀고 있지만 복수의 사람들에게 얘길 들었고 그보다는 진전된 게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박노원 KBS아나운서는 “사장 타이틀을 달고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선배라면 그런 비참함을 후배들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 얼마나 참담함을 느껴야겠나. 선배라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속히 퇴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