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기자 2017.09.01 18:13:43
“김장겸은 물러나라. 고대영은 물러나라. 적폐인사는 물러나라.”
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방송의 날’ 행사장 앞. 200여명의 MBC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이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며 피케팅 시위를 벌였다. 특히 김장겸 MBC 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 등이 입구에 들어서자 수백여 명의 취재진이 경호원과 대치하며 극심한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KBS와 MBC는 4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날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당해 노동청의 소환에 응하지 않은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방송 90주년을 맞아 열리는 ‘방송진흥유공 포상 수여식 및 방송의 날 축하연’ 행사장에는 언론계에서 사퇴를 요구받고 있는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등이 참석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불참했다. 방송의 날 행사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총리, 국회의장, 관련 부처의 장차관들이 관례적으로 참석해왔으나, 이번 행사장에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계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정부 측 인사의 행사 불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는 전날 “방송의 날 기념식에 참석 예정인 정부 부처 및 정치권 인사들에게 요청한다. 국무총리, 방송통신위원장 및 관련 부처 장차관의 기념식 참석은 언론 개혁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는 언론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수치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KBS 사장이자 고대영 한국방송협회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 땅에 첫 전파가 나온 뒤로 일제 강점기를 거쳐 반세기 가까이 지나는 동안 방송은 늘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했다”며 “양질의 콘텐츠를 통해 해외 시청자까지 사로잡아 국가 문화 전반에 큰 파급력을 주고 있다. 우리 지상파 방송인들은 전 국민이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통해 문화 발전과 사회의 소통에 기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총파업 등 KBS와 MBC 등 구성원들의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일체 발언하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동식 前 KBS 본부장과 연기자 故김영애씨를 비롯한 5명이 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문화포장 6명, 대통령표창 13명, 국무총리표창 13명 등 총 37명이 정부포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방통위원장표창은 14명, 과기정통부장관표창 5명, 문체부장관표창 15명 등 총 34명이 장관표창을 수상했다.
수상자 명단에는 언론계에서 ‘적폐 인사’로 꼽히거나 ‘부적격 인사’로 거론된 인물도 이름을 올려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방송진흥유공 정부포상은 매 10년 마다 수여되는 상으로, 방송발전에 크게 공헌한 방송인을 포상해 방송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취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을 비호하고 공영방송을 몰락시킨 인사에 상을 수여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이다. 특히 정부포상과 달리 한국방송협회장 표창은 정부의 터치 없이 고대영 KBS 사장의 권한 하에 수여하는 상이기 때문에 적폐인사가 수상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전날부터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이날 한국방송협회장 수상자 명단에는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과 김수정 홍보국장이 이름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신 국장은 MBC 아나운서들이 ‘MBC 아나운서 잔혹사의 중심’이라고 지목, 끊임없이 사퇴 요구를 받은 바 있다.
내부의 한 기자는 “동료 아나운서를 몰아낸 신동호 국장 외에도 아나운서 출신의 김수정 국장은 김재철 전 사장 체제에서 정책협력부장을 맡으며 내부에서 지탄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재철 체제 하에서 부역했던 언론인들이 이름을 올린 건 인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도 부적격 대상자의 수상 소식에 유감을 표명했다. KBS본부에 따르면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김순기 제작기술본부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공정하지 못한 보도로 공영언론 KBS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이 격화되고 길환영 전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비등하던 상황에서, 공영방송 KBS를 바로세우려는 구성원들의 노력에 반하여 보직을 아무 거리낌 없이 수락하는 등의 행위로 노동조합등과 구성원들로부터 부역간부로 꼽힌 인물이다.
KBS본부의 관계자는 “방통위원장의 표창을 받은 이준호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또한 12년간 KBS국악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 독단적 전횡을 일삼아 온 인물이다. 이미 잦은 음주와 불성실한 악단관리로 단원들의 신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또한 음악적 존경심 마저도 상실되어 지휘자로서 권위를 상실한지 오래됐다”고 밝혔다.
문체부장관의 표창을 받은 박종복 스포츠국 부장도 문제 인사로 거론됐다. 지난 2016년 정연욱 기자가 ‘이정현 녹취록 침묵’에 대해 기자협회보 기고를 통해 폭로해 부당 전보될 때, 그는 해당 기자를 조롱하는 연명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시상식 말미에 소감 발표에서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방송의 주인은 정부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닌 시청자인 국민이라는 점”이라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은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방송인 스스로 외면하지 않았나 성찰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부위원장은 “국민에게 신뢰받는 방송만이 우리 방송이 나가야 할 길이다. 방송이 국민적 기대에 걸맞는 공적 책임을 다하고 국민의 신뢰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해야한다.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 자율성을 회복하고 더욱 신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윤창현 SBS본부장, 지정구 한겨레지부장, 한대광 경향신문지부장, 이주영 연합뉴스지부장 등도 수백여명의 기자, PD, 아나운서와 함께 행사장 밖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 고대영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취재진을 피해 다른 출입구로 몰래 입장한 고대영 사장을 두고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출퇴근 할 때도 개구멍 방송의 날 행사도 개구멍, 이게 사장입니까. 창피해서 KBS 다닐 수 없다. 고대영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정치권의 외면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MBC와 KBS의 방송 출연 및 인터뷰 등에 일체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오전 “현재 KBS, MBC 노조가 공영 방송 바로세우기를 위해 파업중에 있다”며 이 같은 방침을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행사에 불참 의사를 통보했다. 이날 수상자로 지목된 ‘무한도전’의 김태호 MBC PD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