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영 기자 2017.08.30 16:06:13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밀접한 유착이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을 핵심 근거로 들며 뇌물공여와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 5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기자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판결을 특별검사팀의 승리로 봤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특검팀이 제기한 공소사실 중 대부분의 혐의가 유죄로 판결났다”며 “삼성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특검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한 기자도 “특검이 주장하는 정황증거들을 법원이 주요하게 본 것 같다”며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증언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캐비닛 문건, 안종범 수첩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반면 경제지 한 기자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출연금을 낸 혐의는 강압적 측면이 있다는 이유로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며 “특검이 기소한 액수 중 상당 부분이 무죄로 나와 상급심에서 다툴 여지가 커졌다”고 봤다.
‘세기의 재판’을 보는 언론사들의 시각 역시 다소 달랐다. ‘사필귀정’이라고 보는 언론사가 있는가 하면 ‘정치와 대중여론을 의식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경향신문은 26일자 사설에서 이번 판결을 “사필귀정”이라고 규정하며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도 같은 날 사설에서 “판결에 앞서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이번 재판 자체를 ‘우리 사회의 반 재벌 정서에 편승한 인민재판’으로 폄하했고 경제적 악영향을 부각시켰지만 이번 판결은 재벌과 권력 집단이 더는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환기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앙일보는 26일자 뉴스분석에서 “유죄 근거로 ‘정경유착’을 내세웠지만 이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은 끝내 없었다”며 “기업이 권력의 강압적 요구를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이미 정치권과 여론재판으로 중형을 선고한 마당에 재판부에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며 “무죄추정 원칙, 증거재판주의 등 사법의 기본원칙이 설 자리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묵시적 청탁’을 두고 법리 논쟁이 뜨겁게 점화됐다. 삼성 측 피고인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명시적인 청탁’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의 존재에 대해서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26일자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부회장이 서로 마음속으로 청탁을 주고받았는지는 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이 이심전심 청탁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일 수도 있다. 이쪽이면 유죄고 다른 쪽이면 무죄”라면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28일자 기사에서 “과거 주요 뇌물 사건에 있어 ‘묵시적 청탁’은 폭넓게 인정돼 유죄 근거로 인용돼 왔다”며 “4대강 사업 설계업체로부터 수천만 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4년 징역 3년6월이 확정된 장모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법조계에선 판례를 종합해 볼 때,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의 근거로 ‘묵시적 청탁’을 든 1심 재판부 판결에 법리적인 문제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사 한 기자는 “뇌물 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얘기를 하지 않으면 어차피 직접증거보다 정황증거를 놓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재판부가 전반적인 진술이나 증거가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상식에 근거해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심에서는 증거를 더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 위기설과 관련해선 언론사들의 시각이 대부분 일치했다. 언론사들은 28일에 이어 29일까지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총수 공백 장기화에 따른 경영 차질”과 “외부에서 본격화될 수 있는 삼성에 대한 경영권 간섭”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한겨레는 26일과 28일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3세 승계가 난관에 봉착한 것이지 글로벌 기업 삼성이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