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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참 나쁜 사람…사장직 유지하려 KBS 인질로 삼아"

KBS는 왜 제작거부에 들어갔나

최승영 기자  2017.08.30 14: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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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국민 품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두려워”
박종훈 기자(기자협회장, 1998년 입사)


“공정방송을 회복하는 데 동참할 마음이 있는데도 못 나온 분들이 많이 있어요. 아직 얼마든지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동참을 고민하는 분들 빨리 결단을 내려서 우리 모두 공영방송 KBS를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됐으면 합니다.”


28일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간 KBS기자들. 박종훈 KBS기자협회장은 아직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선·후배들에게 이 같은 말을 전하고 싶어 했다. 명백한 호소. ‘모두가 함께 하자’는 부탁.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제작거부를 결행한 이들을 떠올리며 열렬한 투사를 생각했다면 의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원래부터 그랬다.


달라진 건 회사였다. KBS의 현실이, 가장 평범한 KBS기자인 그를 투쟁의 대오 가장 앞으로 떠밀었다. 특히 후배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누구라도 힘든 임기(지난 7월부터 1년)를 예상할 수 있는 시기, 그가 KBS기자협회장직을 맡게 된 이유다.


“20년 간 기자생활하며 강성으로 분류된 적도 없고, 그냥 내 일을 하는 전문기자의 길을 걸었어요. 그러다 동기와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엄혹한 시절에 양심에 크게 걸리는 리포트 없이 산다. 다행이다’ 그런 얘기. 그때 뒤에서 후배가 버럭 화를 냈어요. ‘선배들 못 시키니까 그거 다 후배들이 하는 거 모르세요. 왜 가만히 계시나요.’ 20년차 쯤 되다보니 피할 수 있었던 건데. 부끄러웠습니다. 수많은 유탄을 후배들이 맞으며 고통에 신음할 때 ‘나만 괜찮으면 되지’라고 생각한 거잖아요.”


협회장이 되고 수도 없이 만난 후배들에게서 그는 열정과 열망의 크기를 확인했다고 했다. 선배로서 아무 역할도 못했다는 자괴감을 쌓은 시간. 후배들을 말할 때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반면 기자 대표로, 매일의 KBS 뉴스를 결정하는 국·부장단 편집회의에 참석하며 느낀 소감을 얘기할 때는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언론인으로서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우리 면피했어, 옛날하고 달라졌어, 한 개는 했잖아’ 이런 느낌”이라며 “예전엔 그거조차 안했으니 조금 달라졌다고 해야하나”라고 꼬집었다. “고대영 사장이 조금이라도 회사를,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즉각 퇴진해서 KBS를 하루라도 더 빨리 정상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시작이다. 사장 퇴진은 KBS 복원을 위한 첫 발이다. 그는 “9년 동안 끝없이 무너져 간 시스템을 복원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기자들이 현업을 놨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 할 일은 KBS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서로 어떤 꿈을 꾸는지 이상을 얘기하고 현장을 토대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같이 브레인스토밍 하고 함께 공정방송을 담보하는 시스템을, 우리 손으로 설계하고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 기자협회장은 높은 ‘분’이 아니라 높은 ‘분’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자리니까. 이제 본격적인 제작거부는 시작됐고, 기한은 없다. 어떤 일이 생길지는 미지수다. “제가 진짜 두려운 게 하나 있는데, 우리가 이번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공정방송을 못 세우고 KBS를 복원해 국민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치는 게 훨씬 두려워서 다른 게 두렵지 않아요.”




“단독을 해도 어떻게 나갈지 몰라 무서워요”
정다원 기자(뉴스제작 3부, 2010년 입사)


정다원 KBS기자는 “나 때문에 리포트가 못 나가게 됐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건 너무 아닌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못 본 부분이 있는 건가 싶어 자책을 했다”고 2011년을 회상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순환근무로 지역에 내려가서 겪은 일. ‘4대강 사업’ 중 잘된 곳을 찾아 주민 목소리를 담아오라는 갑작스런 지시. “‘통계라도 나왔나요? 살기 좋아졌다는 자료가 있나요?’ 물었어요. 없대요. 본사에서 지침이 왔대요. 공사한 수십여 곳 중 2~3곳만 묶어서 리포트를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어요. 팀장이 난리가 났어요. 누군가에 전활해서 쩔쩔매요. 가치관 혼란이 들었어요. 주니어 때는 판단에 확신이 없잖아요.”


이제 7년차가 된 정 기자가 2010년 입사 이래 KBS에서 보낸 한 철, 아니 전체는 자책과 자기 분열의 시간이었다. 동기나 후배들도 같은 얘길 한다. “‘재미가 없어요, 보람이 없어요. 단독을 해도 어떻게 나갈지 몰라 무서워요.’” 정 기자는 “안에서 목소리 내지 못하는 현실, 그러면서 KBS기자직을 포기 못하는 나 자신 사이에서 마음이 막 분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된 게. 입사 때부터 선배들은 “안 좋은 때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미 ‘안 좋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몸담은 후에도 회사는 계속 안 좋아졌다. 좋은 기자들은 밀려났고, 선배들은 어느 순간 적이 됐다. “2012년만 해도 캡과 바이스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있었어요. 그런데 2016년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 발족 쯤 여러 일이 있었어요. 한 후배기자가 해직됐던 한학수 MBC PD 책을 기자 몇한테 선물했다가 인사철도 아닌데 편집부서로 발령이 났어요. 캡이 국장한테 보고한 거고요. 선배가 적이 되고 후배들이 고립되는 상황이 된 거예요.”


이 같은 상황에서 주니어급 기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 것도 안 하진 않았다. 역부족이었을 뿐. 정 기자는 국정원 댓글 이슈가 불거졌을 당시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경찰의 오락가락하는 수사발표를 다룬 리포트. 부장과 다투고 국장실에 쳐들어갔던 일. 그렇게 “(경찰이) 말을 바꿔”라는 구절 하나를 지켰다. 새파란 기자가 국장실로 찾아가 항의할 수 있다는 게 지금은 먼 과거가 됐다. 왜 KBS 기자들이 ‘님’자를 붙여 간부나 선배를 부르지 않는지, 안에서부터 권위에 익숙해지면 밖에서도 질문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밖에선 너희 각자가 KBS라고 막내 기자들에게 말해 주던 선배가 앵커, 특파원을 맡으며 후배들 반대편에 서는 걸 봐온, 그런 시간.


스물아홉, 다른 길을 걷던 그가 기자일을 시작한 나이다. 어느덧 이렇게 살 수도, 안 살수도 없어진 연차, 경력. 그간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2016년 말, 실망 끝에 사표를 냈다가 만류 당했다. “아이에게, 사람들에게 덜 부끄럽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왜 제작을 거부하냐는 말에 “가만히 있진 않았지만 충분히 힘을 모아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항상 지갑에 갖고 다니는 메모, 방송법 제1장 제1조(“…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가 말하는 그런 방송사를 바란다면 무리일까. 주니어급 기자가 “(시키니까) 그냥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야만 하는 공영방송사가 우리에게 최선일까. 그는 묻고 있다.


*정다원 기자의 "한 후배기자가 뉴스타파 최경영 선배 책을 기자 몇한테 선물했다가 인사철도 아닌데 편집부서로 발령이 났어요. 캡이 부장한테 보고한 거고요"라는 발언 중 당시 선물한 책은 한학수 MBC PD의 책이었고, 부장이 아닌 국장에게 보고된 것이란 사후 연락에 따라 30일 오후 3시23분 수정.


“KBS 망가지는데 내 갈 길만 갈 수 없어”
김영근 기자(라디오제작부, 1987년 입사)


김영근 KBS기자는 고대영 사장을 중심으로 한 현 지도부를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기껏해야 1년 남짓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KBS란 공적조직을 인질로 삼은 거죠. 싸움이 시작되면 피아가 분명해질 텐데 후유증을 모를까요. 조직내부를 멍들게 하고 앞으로도 갈등 구조를 지속시킬 수 있는데 부추기거나 그대로 둔다는 점에서 KBS에 위험한 세력인 거죠.”


1987년 입사한 30년차 기자가 제작거부에 동참하며 현 경영진에 대해 내린 평가.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다 내려놔야 하는 연차라고, 누군가는 그리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왜 그는 이 불길에 불씨 하나로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을까. 그는 “KBS에서 평생을 보냈다. 내 모태가 망가지고 있는데, 초연하게 내 갈 길만 잘 챙긴다? 그건 아닌 거 같았다”고 답했다. 후배들이 그동안 회사에 분노, 슬픔, 실망을 느꼈다면, 고참들은 모독감을 느꼈을 법하다. 기자로 이곳에서 보낸 그 세월에 대한 부정, 아니 삶 자체에 대한 모독 말이다.


현직에 있는 취재기자 중 최선임에 해당하는 그는 머잖은 퇴임을 앞두고도 KBS의 현실에서 비껴서지 못했다. 해설위원이던 지난해 7월 김진수 해설위원과 함께 겪은 ‘사드 관련 해설에 대한 보도지침’ 사태 당시 회사에 가장 “절망했다”고 그는 밝혔다. 당시 언론노조 KBS본부는 고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사드 해설이 ‘KBS뉴스방향과 맞지 않다’는 등의 말을 했고, 간부들이 이들에게 인사조치 가능성을 통보했다고 폭로했다. 사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고, 해설위원들에게 간부회의 내용을 전한 해설위원실장은 사장이 그런 식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김 기자는 “해설위원실장은 그리 말하지만 문제는 그 얘길 1명이 아니라 10명(해설위원들)이 다 들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변명하는 게 한심스러웠다”고 했다. 이어 “임원회의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도지침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얘길 하는 사장의 오만함과 독선, 당시 보도본부장이 사장이 지적한 그날 둘만 따로 불러 인사에 대해 얘길 한 무지함, 무신경이 경악스러웠다”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보수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회사 지도부는 ‘빨갱이’ 정도로 봤던 거 같다고 김 기자는 말했다. “길환영 전 KBS 사장 당시 보도본부장이 녹화 중 불러 그런 말을 합디다.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사장실에서 김영근이 해설하는데 당신이 한번 봐야되는 거 아니냐’ 그랬다고. 전례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사회로 가겠다고 자원했죠. 이사회 있다가 나중에 해설위원실로 돌아왔는데 당시 부사장이 본부장한테 푸념을 했다더라고. ‘김영근 같은 좌빨을 이사회에 보내냐’고.”


산전수전 겪어 여기까지 왔다. 어느덧 머리가 큰 딸이 ‘아빠가 투사도 아닌데 뭘 그리 고민을 하냐. 안쓰럽다’는 걱정도 한다. 그는 “회사가 아무리 비관적이어도 이대로 두는 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후배들에게 “지금 이순간에도 신중함을 가장해 도피하고자 한다면 극단적인 비겁함밖에 남지 않는다”며 “방송계 맏형으로서 KBS 구성원 모두가 이 큰 싸움에 주도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근 기자의 발언 중 "그래서 이사회 사무국장 하겠다고 하고 도망갔죠"라고 하는 부분이 사실과 달라 30일 오후3시 수정. 김 기자는 당시 '이사회 사무국장직'이 아니라 이사회 근무를 희망한 것임.  



“동료들과 함께 기쁘게 싸우고 싶어”
한성윤 기자(스포츠국 팀장, 1996년 입사)


한성윤 기자는 KBS 보도본부 스포츠국의 팀장이다. 보직을 맡고 있다. 기자는 보도를 ‘작성’하지만, 기자 보직자는 보도를 ‘결정’한다. 급에 따라 권한 차이는 있지만 그가 지금 하는 일은 여기 속한다. 그는 지난 7일 보직사퇴 결의를 밝히는 기자 보직자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년6개월 간 휴가 기간에도 방송했던 2TV ‘뉴스타임’ ‘스포츠그램’ 코너를 비롯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에선 이미 빠진 상태. “‘스포츠뉴스’처럼 팀원 전체 결정을 따르는 부분에서 아직 저는 못 빠지고 있어요. 다만 평기자 11명 전원은 먼저 나갔어요. 저는 31일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갑니다.”


물론 그를 다른 보직자와 같이 놓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회사에서 권한을 맡긴 이’라는 상징성, 책임과 부담 때문에 보직자들은 개인의견 밝히기를 꺼려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 기자는 그러지 않아왔다. 스포츠국 구성원의 총의를 따르지만 개인 차원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계속 내온 게 그다. 지난 5월 소속 부서 담당 국장은 그런 그가 보직자로서 ‘고대영 사장 퇴진촉구’ 성명에 이름을 올린 점을 이유로 보직을 해임하는 내신을 올렸다. 회사는 결국 발령을 내지 못했다. 한 기자는 “그렇게 종결이 됐고, 지난 8월 초 인사가 나면서 이런 일이 있을 때 또 다시 성명을 올리고 행동할 거냐고 묻는 일이 있었다”며 “당연히 할 거라고 했다. 대단한 직이면 글이라도 올리고 보직을 내려놓겠는데 그렇지도 않아서 그냥 이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보도국에 비하면 스포츠국은 아이템 특성상 간부들과 직접적인 충돌이나 갈등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 스포츠국도 그간의 사정을 고려치 않은 갑작스런 구성원 교체를 겪었다. “고대영 사장이나 정지환 보도국장 전에도 정치성향은 보수적이었을지라도 사람을 그렇게 막 대하진 않았어요. 사장 하수인이 아니라 스포츠를 사랑하고, 스페셜리스트를 인정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국장을 맡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단 남아 있는 간부 전부를 적으로 보고 관계의 단절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한 3분의 1은 사장 하수인이라고 보긴 어려울 거 같은데요.”


1996년 스포츠 기자로 KBS에 입사한 그는 회사에서 딱 중간 쯤에 해당한다. 이제 막 마이크를 놓은 동료, 선·후배들에게 그는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가진 말자고 했다. 그 역시 “이번에도 우리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다면 KBS 문 닫아야 된다”는 생각이지만 “장기전을 준비하자”고 말했다. “너무 경직되지 않게, 재미있게 기쁘게 투쟁을 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봐요. 사람을 남기는 투쟁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게 재미있구나’ 그걸 느끼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여태껏 이 정도로 좋은 환경 속에서 KBS 기자들이 투쟁에 나섰던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단 그의 표현대로 “1점차 뒤진 9회말 1사 만루, 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투 볼” 정도의 상황. 잘 하면 역전할 수도 있지만 병살타가 나오면 질 수도 있는 정도. 한 기자는 대학교 학생회 활동 당시 자주 부른 노래 하나를 소개하며 이렇게 싸워나가자고 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기쁘게 싸우러 가자.”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