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기자들이 28일 자정을 기해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해당일시부로 야근자들은 업무를 중단한 채 철수했고, 서울을 제외한 전국 KBS기자들도 29일 0시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한다. KBS기자 25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KBS신관 계단에서 출정식을 열고 고대영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싸움의 첫발을 내딛었다.
박종훈 KBS기자협회장은 출정식 시작 첫 순서로 제작거부 선언문을 낭독했다. 박 협회장은 선언문을 통해 “공영방송 KBS뉴스는 가파르게 추락을 거듭해 왔다”며 “그 참담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은 고스란히 현장에 있는 일선 기자들의 몫이 되어 왔다”고 했다.
이어 “추락의 핵심은 바로 고대영 사장에게 있다. KBS뉴스가 추락한 지난 9년 동안 고대영 사장은 보도국장과 해설위원실장, 보도본부장 등 보도본부 내 모든 요직을 거치며 뉴스와 조직을 망가뜨렸다”며 “그럼에도 승승장구했던 건, 정권의 입맛대로 KBS뉴스를 재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협회장은 “우리 기자협회 회원들은 오늘 전면 제작거부에 들어간다. 1차 목표는 고대영 사장의 퇴진”이라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시청자들이 신뢰하는 KBS뉴스를 복원하는 것이다. 잠시 일터를 떠난다. 승리한 뒤 돌아올 것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KBS기자협회에 따르면 28일 제작거부에 동참한 기자들은 277명이다. 불참자는 19년차 이상 보직간부 140명과 평기자 31명 등이다. KBS기자협회는 29·30일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하는 기자들을 포함하면 이번 제작거부에 참여하는 전체인원이 47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앵커나 지역 방송국장 등 일부 보직자들은 보직을 사퇴하고 제작거부에 동참했다. 30일 KBS PD들도 제작거부를 예정한 만큼 약 1200명에 달하는 공영방송 기자, PD들이 동시에 현업에서 빠지는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방송프로그램의 결방 사태도 전망된다. KBS기자협회에 따르면 1라디오 오후 2시 방송되는 뉴스중계탑이 축소됐고, 2라디오 아침, 정오, 저녁 종합뉴스가 결방된다. ‘취재파일K’가 결방되고, ‘시사기획창’은 12일까지 기존 편집분 방송 뒤 결방이 예상된다. 2TV ‘경제타임’과 재난방송센터, 뉴스광장 경인지역 로컬방송 역시 삭제됐다. KBS 사측은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결방이 결정된 뉴스 프로그램은 월~목 오후 6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진행되는 2TV ‘경제타임’ 뿐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만들어 놓은 방송분을 소진하면 이후부터는 결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출정식에서는 KBS의 고참급, 중간급, 막내급 기자들이 이번 제작거부와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30년차(14기) 임병걸 KBS기자는 “30년 전에도 거의 같은 목표, 방송 민주화를 두고 선배들이 모였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방송을 국민의 눈과 귀가 되게 하자는 슬로건을 들었는데, 지금 또 다시 크게 다르지 않은 슬로건을 들었다는 게 착잡하다”면서 “그땐 사방이 적이었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싸움은 이길 수밖에 없다. 역사가 요구하는 당위고,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떨리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본다“며 함께 전선에 선 동료, 선·후배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허리 연차에 해당하는 김세정 KBS기자(28기)는 “그동안 제작거부나 파업에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참여했는데 이번 파업은 주저를 많이 했고 두려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쉬지 않고 구호를 외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9년 동안 누적됐다. 따박따박 월급을 다 받았는데 마치 '프로불편러'가 된 것처럼 불평한 거 말곤 한 게 없었다. KBS뉴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제가 기여한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제작거부가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라는 것, 그걸 채우는 제작거부가 되길 바란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 각자가 KBS라고 생각한다. 꼭 이기는 투쟁을 하자”고 강조했다.
막내 연차(43기)인 송락규 KBS기자는 자신의 취재경험을 얘기하며 국민들에게 당당할 수 있는 KBS가 되길 바라는 희망을 전했다. 송 기자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한 기자회견장에서 유족들이 KBS, MBC 기자를 찾는데 손을 들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면서 당시 “손을 들어 뭐하나 방송에 안 나갈 텐데”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고 했다. 그는 “제작거부 이후에 다시 그런 현장에 나갔을 때, 그런 현장에 나갔을 때 당연하게 손을 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타 언론사, 언론시민단체 등에서의 지지 및 연대 발언도 따랐다.
김현철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같이 행동하지는 못해도 마음은 같이 한다는 걸 보이기 위해 냉큼 달려왔다. 오늘 여의도를 오며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할까.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 회장 이전에 동료 기자로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가 취재현장을 떠난다는 건 불가피한 마지막 선택이고 최후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이렇게 할 수는 없다는 양심선언과 펜을 든 조폭이 되지 않겠다는 숭고한 저항이기도 하다”며 “두려울 수 있다. 회사는 징계 카드를 꺼내 보복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숭고한 투쟁이 징계대상이 될지 정의로운 여정의 시작이 될지는 국민과 시청자가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또 다른 공영방송 MBC의 왕종명 기자협회장은 “최근 여의도에서 저녁을 먹다가 현재 KBS경영진에 몸을 담고 있는 분을 우연찮게 만났다. ‘KBS에서는 해직자도 없고, 기자, PD, 아나운서를 스케이트장에 보내지도 않았는데 왜 고대영 사장보고 퇴진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더라”며 “이분들의 상황인식이 이렇구나해서 답답했다. 틀렸다. 우리가 김장겸 사장 퇴진을 외치며 제작거부, 총파업에 들어가려는 건 해직자가 있어서, 기자와 PD를 스케이트장 관리직을 시켜서가 아니다. MBC의 공영성과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고, 신뢰도와 공정성을 빨아먹고 그 껍데기를 자기 자리를 채워준 정권에게 재물로 바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옆집과 비교하지 말고 구성원들이 어떤 목소리를 외치는지 들어라”라고 덧붙였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공영방송이 바로 서야지만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될 수많은 문제가 공론의 장에 펼쳐질 수 있다”며 “힘을 내서 흐트러뜨리지 않고 이 싸움을 끝까지 몰고 가면 좋겠다. 우리도 손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 시간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KBS기자들은 이번 제작거부에 임하는 각오와 목표,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KBS기자들은 이날 기자회견과 출정식에 이어 29일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기자협회(지역 KBS기자들) 제작거부와 30일 PD협회(KBS PD들) 제작거부 공동출정식 참석을 예정하고 있다.

징계성 인사로 제주 발령이 났다가 복귀했고, KBS기자협회 집행부이기도 한 정연욱 KBS기자는 “이번 제작거부 중 다른 직종, 직능협회와의 단체행동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고대영 사장 퇴진을 지상 목표로 진행되겠지만 무너진 KBS의 저널리즘 복원에 관한 전반적 논의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언제까지 진행될지 기약은 없다”고 밝혔다.
박종훈 KBS기자협회장은 “KBS 내부 공정방송을 위한 내부 시스템이 너무 많이 무너져 왔다. 다시 복원해 나가는 작업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새 집을 짓는 과업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제작거부가 아니라 다시 만들어 가야 할 KBS가 어떤 KBS가 될지 우리 스스로 찾고 반성하고 만들어가는 제작거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체된 게 아니라 내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결과로, 국민들에게 외면 당하는 KBS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KBS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