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끝이 아닙니다. 2008년 MB정권의 언론장악이 시작된 YTN에서 9년이 지나 스타트를 끊은 거죠. KBS와 MBC 문제해결까지 잘 이어져야 합니다.”
한 YTN 해직기자는 복직에 대한 노사 합의 후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9년. YTN 해직기자들이 복직하는 데 걸린 기간.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해직기자’란 이름으로 그 시간을 버텨낸 이들.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라는 지적은 유효하다. 아직도 ‘해직 언론인’이 있기 때문에. 이용마, 정영하, 강지웅, 박성호, 최승호, 박성제는 아직 MBC로 돌아가지 못했다. 해직일은 2000일에 다가간다. 항암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는 지난 6월 언론 인터뷰에서 MBC로 돌아갈 날을 꿈꾸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꿈꾸지 않는다. 당연히 돌아갈 거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로 대변되는 그간 언론탄압의 현실, 공영방송사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YTN해직기자들의 복직이 개별 언론인에 대한 보호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개선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요구다.
공정방송 요구로 해직…‘비정상’의 서막
모든 건 이명박 정부 출범이 시작이었다. 지난 2008년 7월 이명박 정권이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를 YTN 사장으로 선임하며 ‘낙하산’ 논란이 인다. YTN 구성원들은 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공정방송 투쟁을 했다. 그해 10월 6명의 기자가 해고됐다. 2014년 11월 대법원 판결로 절반은 복직을 했지만 나머진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 3년이 더 걸렸다.
그리고 2012년. 여전히 이명박 정부 시절. MBC에서 사달이 났다. 당시 MBC 노조는 사상 최장기간(170일) 파업을 벌였다.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를 요구했다. ‘MB 낙하산’인 김재철 사장의 전횡으로 방송의 공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파업 도중 정영하 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등 노조 집행부와 박성호 기자협회장,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가 해직됐다. 법원은 1심에 이어 지난 2015년 4월 항소심에서도 해고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 후 2년이 넘었지만 아직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이들이 외친 ‘공정방송’이란 언론인에게 무엇일까. 1·2심 법원은 ‘방송의 공정성 요구가 방송 종사자의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취지를 선고문에 명시했다. 언론인이 자신이 속한 방송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건 어떤 특권이 아닌 당연한 권리라는 내용. 다시 말하면 현실에선 이 당연한 권리주장이 해고의 사유가 되는 ‘비정상’이 자행된 것이다.
‘해고’라는 극단적인 조치는 ‘비정상’의 일면일 뿐이었다. MBC 노조가 성명과 광고 등을 통해 밝힌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 157명”이란 숫자는 그간 MBC의 구성원 개개인은 물론 노동조합, 기자들에 대한 탄압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지를 방증한다. 실제 파업 후 MBC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조치들이 잇따랐다. 노조에게 억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되고, 시용인력이 보도국 등에 대거 경력채용되는 일이 자리 잡았으며, 교양국이 해체되는 조직개편이 이뤄지는 등 ‘공정방송’을 요구해 온 구성원들을 두고 여러 조치가 잇따랐다.
‘MB낙하산’으로 평가받은 김재철 사장 취임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던 언론인들이 마이크를 빼앗긴 기간은 공교롭게도 MBC가 언론사로서 존재감을 잃은 시기와 맞물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매년 공개해 온 보고서에서 MBC는 2010~2015년 6년 간 지상파 방송 중 시청자 만족도 꼴찌를 기록했다. 촛불광장에서 ‘언론도 공범’이라고 외친 시민들의 외침이 남긴 과제는 명확해 보인다.
“KBS, MBC 내부 구성원 투쟁 계속”
국민들 사이에선 왜 이제와 싸우는 척 하느냐는 싸늘한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권교체 전에도, 후에도 항상 공영방송 정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해 온 건 이들 방송사 구성원이었다. 시류편승보다는 수 년 간 이어진 내부 투쟁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정권 출범을 계기로 힘을 받은 쪽에 가깝다는 의미다.
현재 KBS와 MBC 구성원들의 요구는 고대영과 김장겸 사장 사퇴로 모인다. YTN 조준희 사장이 정권교체 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사건은 내부 투쟁의 ‘변곡점’이 됐다. 이들의 주장은 ‘정상화’를 위해선 공영방송을 망쳐온 당사자들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이 신뢰를 찾기 위해선 최소한의 인적청산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노조, 사내 직능단체, 기자, PD 등 구성원들은 제작거부에 들어가거나 총파업 의지를 드러내며 퇴진요구를 전하고 있다.
실제 MBC는 연쇄 제작거부로 내부가 들끓고 있다. 지난 11일 보도국 취재기자 81명이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앞서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지며 카메라기자들도, 그간 제작자율성 침해를 들어 <PD수첩> 제작진들도 제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 보직자·간부들은 보직을 사퇴하고 있다. 앞서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를 외친 김민식 PD에 대한 징계 인사위 강행 등으로 결집된 내부는 구성원의 성향을 파악해 인사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블랙리스트’ 논란, 연쇄적인 구성원들의 제작거부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폭풍전야 분위기다.
KBS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지난 14일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중 기자, PD직군 280여명이 각각 연명성명을 내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7일 보직을 맡고 있는 기자(부장·팀장·앵커) 23명이 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자신들의 보직사퇴를 경고했다. 앞서 KBS 14년차 이상 고참급 기자 118명과 팀장급 PD 76명도 현 상황에서의 인사권 행사를 비판하며 퇴진을 촉구한 바 있다.
반면 공영방송사 사장들이 스스로 퇴진할 기미는 감지되지 않는다. 최근 KBS에선 부사장부터 본부장, 국장, 부장급까지 인사가 단행되며 반발과 함께 ‘제2기 체제 구축’이란 해석이 나왔다. MBC는 앞서 <PD수첩> 이영백 PD에게 2개월 대기발령을 내린 데 이어 지난 4일 <시사매거진2580> 소속 기자 4명과 <PD수첩> PD 1명에게도 같은 징계를 내렸다. 잇따른 제작거부 속에서 사측이 경력기자 채용공고를 내자‘대체인력을 위한 것 아니냐’는 반발이 일고 있다.
‘언론개혁’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그렇다면 해직 언론인들이 복직되고, 공영방송사의 사장만 교체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일까. 사장 교체는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의 해결일 뿐이지 이를 촉발한 근원이 아니다. 정치권의 자장 안에 놓인 현 사장 선임 방식이 공공의 이익이 아닌 정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공영방송사를 만들어왔다. 즉 이에 대한 개선 없이는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의 공영방송 보도개입 등이 드러난 ‘이정현 녹취록’, ‘김영한 비망록’ 같은 사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공영방송사 영향력 행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국회의원 162명이 발의한 ‘언론장악 방지법’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법안은 KBS 7대4, MBC 6대3인 이사회의 여야 추천 인사 비율을 7대6으로 조정, 인적구성 격차를 줄이고 사장 선임 시에는 이사회 3분의 2 동의가 필요한 특별다수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현 문재인 정부의 ‘언론개혁’ 움직임에 ‘공영방송 장악시도’ ‘사장임기 보장하라’를 외치는 자유한국당의 스탠스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현재 정부·여당·청와대는 한 목소리로 ‘공영방송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개혁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상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지난 10년 우리 사회에서 무너진 게 많은데 가장 심하게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우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 쪽이 아닐까”라며 신임 이효성 위원장에게 언론개혁을 주문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1일 여당 원내대표, 당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공영방송 사장이 공적 책임과 공정성을 지키지 않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임기 역시 무조건 보장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여론과 명분의 정당성을 떠나 청와대나 정부가 직접 ‘언론’을 개혁하는 주체로 전면에 나서는 건 항상 부담이 있는 일이다. ‘언론탄압’의 소지 때문이다. 방송사 내부 구성원이 그간의 책임을 지고 사장이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정부가 나서 해임시키는 것은 분명 맥락이 다르다. 방송법이 독립성 등 보장을 위해 공영방송사 사장의 임기를 법으로 규정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중요해지는 것은 ‘법과 절차’에 따른 개혁이다. 심지어 지난 이명박 정부가 감사원과 검찰 등을 동원, 임기가 남은 정연주 당시 KBS 사장에게 배임혐의 등을 씌워 해임한 것도 절차를 거치긴 했다. 대법원은 이 혐의에 최종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말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정파 차원이 아닌 그간 공영방송 사장들 임기 중 행해진 제작 자율성 침해와 노동탄압, 공정성 침해의 구체적인 내용, 이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중요해진다.
오는 9월 공영방송사들의 국정감사가 있다. 11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심사 역시 이를 파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 고대영 KBS 사장(1년4개월)과 김장겸 MBC 사장(2년6개월)의 임기종료 전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 교체기가 오기도 한다. 현 야당 입장에선 여당에 유리한 기존 룰을 수용하거나 ‘언론장악 방지법’을 두고 ‘딜’을 요구할 수 있는 시점이다. 당장은 MBC 사장과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기를 두고 방통위원들이 어떤 합의를 낼 지가 관건이다.
공적 자본이 투입된 연합뉴스, YTN, 서울신문, 아리랑국제방송 등 준공영방송들의 지배구조 역시 개선될 필요성이 대두된다. YTN의 경우 한전KDN, KGC인삼공사, 한국마사회 등 공기업 지분이 50%를 넘어 해직기자 사태를 초래한 ‘낙하산’이 가능한 지배구조를 갖췄다. 다른 공영언론들도 마찬가지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공영방송은 시민들의 공적 통제영역에 놓인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소통채널로 가치를 지닌다.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면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본다. 혼란이 예상된다면 그 원인을 만든 경영진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것도 방법”이라며 “무엇보다도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요구하는 구성원을 징계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언론개혁 문제는 국민들과 적극 호흡해야 한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송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기득권 포기를 밝히는 게 순리”라고 제언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