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물러나라" 귀 닫고 임기 연연하는 공영방송 사장들

고대영, 인사로 국면전환 노려
김장겸, PD들에게 고소 당해
공영방송 정상화 나서라 목소리

최승영 기자  2017.08.01 22:38:45

기사프린트

공영방송 정상화는 언론개혁의 1순위로 거론되는 과제다. ‘정상화’ 요구는 비정상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무엇이 비정상이었나. “언론도 공범이다.” 국정농단 국면 촛불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외침 속에 문제의식이 숨어있다. KBS와 MBC 등은 그 중심에 놓인다. 정권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공영방송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언론개혁의 당위는 실현 가능할까.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지난 석 달간 공영방송사를 둘러싼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본다.

커지는 사장 퇴진 목소리
정권교체 후 공영방송 정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한 건 방송사 구성원들이었다. 준공영방송사 YTN 조준희 사장의 자진사퇴 후 KBS와 MBC 방송사 내부 투쟁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고대영 KBS사장, 김장겸 MBC사장의 사퇴 요구가 노조, 직능단체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구성원 개개인들의 연명성명과 페이스북 라이브까지 동원됐다. 정상화를 위해선 공영방송을 망쳐온 당사자들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수 년 간 이어진 내부 투쟁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정권 출범을 계기로 힘을 받은 형국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사 사장들은 전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방송사별로 구성원과 정부를 대하는 태도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스스로 물러날 생각은 없는 것 같다”는 게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최근 KBS는 부사장부터 본부장, 국장급까지의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KBS 한 기자는 “YTN 사장 선임에서 노종면 해직기자가 떨어지는 등 언론과 관련한 상황을 보고선 임기는 지킬 수 있겠다고 판단이 들었고, 나름 노선을 정했으니 인사를 낸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KBS와 MBC 구성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MBC에선 PD수첩 제작진이 김장겸 사장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를 외친 김민식 PD에 대한 징계 인사위 등으로 구성원들이 결집한 상태다.


KBS 내부는 이번 인사를 두고 14년차 기자 118명, 팀장급 PD 76명이 반발했다. 이들은 보직거부 의사와 함께 “이번 인사를 통해 적폐청산이라는 국민의 요구가 무시됨으로써 오히려 KBS가 마치 적폐세력의 교두보로 국민들에게 각인될 우려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 정상화의 어려움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 한 번만 도와달라...내가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반박)하냐...솔직히 (보도에)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보도국장이 나눈 대화, ‘이정현 녹취록’의 일부다. 그간 공영방송사와 정권이 맺은 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문제가 명확해 보여도 언론개혁은 쉽지 않다. 정부라는 정치권력이 자신을 감시해야 할 언론을 오히려 개혁한다는 건 언제고 ‘언론탄압’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사 사장들을 사퇴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방송법 등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영방송사를 위해 사장의 임기를 법으로 정했다. 공영방송사 내부에서 구성원으로서 그간의 ‘보도참사’ 등에 책임을 지고 사장이 물러나길 요구하는 것과 정부가 나서 해임시키는 것은 별개라는 의미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감사원과 검찰 등을 동원해 임기가 남은 정연주 당시 KBS사장을 배임혐의 등을 씌워 해임하는 일을 자행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내렸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방송법에 ‘임면’이 아닌 ‘임명’이라고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임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공영방송사가 특정 정권의 이익에 복무하게 되는 근원은 사장 선임 등 지배구조였다. 국회의원 162명은 지난해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할 ‘언론장악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발로 지난해부터 계류 중이다. 이 법은 사장을 뽑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변경과 특별다수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구성원들의 사장 사퇴요구는 정치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자정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고, 공론화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에 가깝다.

공영방송 정상화 예상 국면은?
현 공영방송사들의 남은 임기는 고대영 KBS사장이 1년4개월, 김장겸 MBC사장이 2년6개월 가량이다. 이들의 임기는 어쨌든 이번 정권 내에 끝난다. 이들의 임기 만료에 앞서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새롭게 바뀐다. 새로이 이사를 선택할 국면이 되면 야당 입장에선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기존 국면의 임명 룰을 받아들이거나 ‘언론장악 방지법’을 두고 ‘딜’을 제시할 수 있다.


가장 눈앞에 놓인 이벤트는 오는 9월 예정된 국정감사다. 알려지지 않았던 기존 공영방송사의 문제가 드러나며 KBS 등의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다. 방통위가 방송법과 시행령의 유권해석을 통해 이슈 사안을 직권 조사할 가능성도 있다.


오는 11월 예정된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재허가 심사 역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재허가는 공영방송사 사장들이 직접 출석하는 경우가 많고, 단순히 보도가 아닌 운영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올 수 있다.


전국 200개가 넘는 언론시민단체는 ‘KBS·MBC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단을 발족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는 100대 과제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보도편성의 자율성 보장 등 언론문제를 포함시켰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1일 취임사 맨 처음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방송”을 언급했다. 의지 확인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흔히 말하는 정치보복이라는 거에 지레 조심을 해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는 것들에 미온적이어서는 안 된다. 언론문제를 전면에 내세웠을 때 집권세력이 위험해진다는 소심함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문재인 정부가 대중과 호흡해야 한다고 본다”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송이 가능한 제도를 만들고 현 정부는 기득권 포기를 분명히 밝히는 게 순리”라고 제언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