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기자 2017.06.07 14:21:49
“최소한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지 않는 사장을 선임하는 게 핵심입니다.” 지난 5일 저녁 YTN 홈페이지에 사장 후보자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오는 16일까지 공모 절차를 받는 YTN은 서류와 면접심사를 통해 언론관과 경영능력, 회사발전 비전과 전략, 도덕성 등을 검증해 최종 사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사추위 가동…‘정치 중립성’에 무게
특히 이번 사장 심사에서 중요한 덕목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그간 새로운 사장이 올 때마다 낙하산 의혹에 휩싸이며 내홍을 겪은 탓이다. 이날 저녁 100여명이 참석한 언론노조 YTN지부 긴급조합원 총회에서는 사장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한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구성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다. 총 5명으로 구성되는 사추위는 한전KDN, 한국마사회, KGC인삼공사 등 대주주가 추천한 인사 3명 외에 시청자와 사원 대표가 각 한 명씩 배정돼있다. 이에 노조는 공정하고 투명한 위원을 추천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상황이다.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방송학회와 같은 제3의 단체에서 노사가 협의를 통해 추천하는 방식으로 시청자 위원을 선정할 예정”이라며 “언론의 공적 책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시청자 대표를 사추위원에 넣은 건 큰 의미다. 사원 위원과 함께 부적절한 사장 후보자를 명확하게 가려내겠다”고 밝혔다.
본래 YTN은 지난 2003년 5월 이사회가 “공공기관의 사장 선임에 준하자”고 합의했고 정관에 이를 명시했으나, 2009년 10월 배석규 전 사장이 선임될 무렵 이 수정안이 정관에서 빠졌다. 내부 보도국 기자들이 보도국장을 3배수로 추려 추천하는 ‘보도국장 추천제’도 이 무렵 함께 없어졌다. 지난달 노사가 보도국장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때 보도국원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를 도입하고, 지난 2일에는 ‘사추위’ 조항을 사규로 마련한 게 큰 의미일 수밖에 없다.
낙하산 사장으로 인한 상처
YTN이 사장 인사에 민감한 이유는 지난 2008년에 겪은 상처 탓이 크다. 당시 기자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이었던 구본홍 전 사장의 선임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6명의 YTN 기자(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가 해고됐다. YTN의 한 기자는 “당시에도 사추위가 있었으나 이미 공모 이전부터 내정설이 돌았던 구본홍 전 사장의 선임이 강행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결국 대량 해고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해직 사태는 구 전 사장 때 일어났지만 뒤를 이어 맡은 배석규 전 사장은 기자들을 향한 대규모 징계를 통해 내부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3월부터 2015년 3월까지 6년간 사장을 지낸 배 전 사장은 사추위를 폐지하고 반발하는 기자들을 징계했다.
노조 활동에 가담한 기자들도 정직과 전보 등 징계 대상으로 거론됐는데, 지난 2012년 임금협상 결렬로 인한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지적하고 3명의 노조 집행부에 대해 정직을 내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김종욱 지부장과 임장혁 공정방송추진위원장, 하성준 사무국장은 각각 6개월, 4개월, 2개월의 정직을 받았다.
YTN의 간판 프로그램인 ‘돌발영상’도 이 무렵 사라졌다. 배 전 사장은 당시 돌발영상의 소재가 상당히 편향적이라고 폐지 이유를 들었지만 YTN 기자들은 “보도가 망가지는 토대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취임해 지난달 사의를 표명한 기업은행장 출신의 조준희 전 사장 또한 보도 공정성 회복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나마 이전 사장들보다 노조와 소통 의지를 보인 만큼 내부 분위기 쇄신에 희망을 품었던 기자들의 실망감은 더 컸다.
무엇보다 해직자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게 사퇴 물결을 이끄는 단초가 됐다. 지난 2008년 해직된 6명의 기자들 중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노조가 “법원 판결을 핑계 삼아 해직자 복직 논의를 피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임기 내 복직을 촉구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YTN…투명한 인사 절실
“보도국 내 자기검열이 만연해요. 그만큼 낙하산 사장을 거치면서 정권이 보도를 쥐락펴락하다보니 ‘발제해봤자 안 될거야’라는 믿음이 생겨 버린 거죠.”(YTN의 한 기자)
YTN은 지난 9년간 낙하산 인사 논란을 거치며 ‘보도 공정성’과 ‘경영 성과’ 모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9년간 이어온 신뢰도 1위 자리를 올해 JTBC에 내주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YTN의 한 기자는 “종편이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있는 데 비해 YTN은 공무원마냥 침체된 분위기”라며 “무엇보다 정부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구조 속에서 눈치 보지 않고 발제하는 분위기를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새 사장 선임에 투명한 절차가 거듭 강조되는 이유다. 권준기 YTN지부 사무국장은 “노조는 사추위 검증 절차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가려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해직기자 복직도 조만간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지부장 또한 “오는 7월 중순에 새로운 사장이 오기까지 정치중립이라는 항목에 무게를 두고 언론인으로서 공정성이 담보되는 인사를 선임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