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영 기자 2017.06.07 13:23:38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라는 책에서 10개의 저널리즘 원칙을 강조한다. 위 두 문장은 그 중 일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저널리즘 원칙들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뉴스 환경이 변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 미디어 환경에서 ‘발로 뛰는 취재’는 대체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보도가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장을 확인하지 않아 ‘노 룩(No look) 취재’라는 오명을 쓰는가 하면, 관성적인 제작과 받아쓰기로 기사의 객관성이 무너진 사례들이 빈번하다.
#사례 1. 지난달 31일 JTBC가 보도한 <강경화 후보자, 거제에 ‘기획 부동산’ 매입 의혹> 기사는 ‘현장 확인’이 지켜지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다. JTBC는 이날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두 딸이 구입해 갖고 있는 경남 거제시의 땅과 주택이 기획 부동산일 수 있다며 이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보도에선 기자의 현장 방문이나 별도의 촬영이 없었다. 현장 영상은 ‘다음 로드뷰’가 전부였다.
평소 강경화 후보자의 배우자인 이일병 교수의 블로그를 통해 집을 짓는 과정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은 JTBC의 보도에 반발했다. 실제 현장을 보면 컨테이너 두 동만 올라가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서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썼다며 ‘노 룩 취재’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기획 부동산 용어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결국 손석희 앵커는 지난 1일 ‘뉴스룸’에서 이 보도에 대해 사과했다. 손 앵커는 “등기부등본과 현지 부동산 등을 상대로 한 확인은 사실에 미흡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사례 2. SBS가 지난달 28일 ‘8뉴스’에서 보도한 <숨은 기능 찾는 재미도 ‘쏠쏠’…유머까지 갖춘 음성 비서> 기사에도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삼성 ‘빅스비’ 등 스마트폰 음성 비서 서비스를 소개하는 기사에 이해 관계자인 삼성 직원을 평범한 회사원으로 둔갑시켜 인터뷰를 한 것이다. 기사 중반에 ‘빅스비’를 시연하는 회사원과 “너무 말을 잘 한다.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고 인터뷰한 조 모 ‘회사원’은 모두 삼성 홍보실 직원이었다.
삼성 관계자가 일반인으로 둔갑해 기사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SBS의 2015년 9월18일 <어떤 페이로 결제할까…‘전화 속 지갑’ 경쟁> 기사에도 조 모씨가 ‘삼성페이 사용자’로 등장했다. 조 모씨는 이 기사에서 “두꺼운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결제가 되니깐 편리한 거 같다”는 인터뷰를 했다.
28일자 기사를 보도한 SBS 기자는 “빅스비 기능이 들어간 핸드폰이 최근에 나와 사용하는 분들 섭외가 잘 안 됐다. 결국 삼성 홍보실에 부탁했고, 그쪽에서 여러 명을 소개시켜줬는데 그 중 삼성 정규직이 아닌 분을 섭외하게 된 것”이라며 “이전에도 등장한 분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분들은 삼성 홍보실 관계자들이 맞아 처음에는 얼굴을 잘랐는데 재미있게 보이려면 얼굴도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넣게 됐다”며 “그러나 이 기사는 절대 홍보성도 아니고 그쪽에서 발주해 준 아이템도 아니다. 순수하게 음성 비서 기술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사례 3. 지난 5일 불거진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의 성추문 사건 보도에서도 ‘사실 확인’에 미흡한 보도들이 쏟아졌다. YTN이 단독 보도한 이후 300건 넘게 쏟아진 보도 중 공개된 CCTV 영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기사가 일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최 회장이) 아가씨를 못 도망가게 손깍지를 ‘꽉’ 끼고 호텔 카운터에서 결제 중이었다”고 진술했지만 서울신문을 비롯해 한국경제TV, 헤럴드경제 등은 이를 확인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함께 호텔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며 마치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간 것처럼 기사를 썼다.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 측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과 동시에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셈이다. 박건식 한국PD교육원장은 페이스북에서 “YTN에 전화 한 통만 하면 간단히 확인될 것을 동영상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했다”며 “깍지에 끼여 완력으로 끌려간 성추행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순간이다. 인권침해도 이런 인권침해가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보도들이 발생한 원인을 △지나친 보도 경쟁 △시장에서의 처벌 미비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사회적 토양 침식으로 분석했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뉴스 시장에선 실수를 했다 해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묻어가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자체적으로 이런 실수를 징계하는 조직도 없다. 형식적인 윤리강령만 있을 뿐 적용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보도들은 일종의 ‘백서’로 만들어 누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두고두고 기록에 남겨야 한다”며 “업계 스스로 권위와 존중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