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홍보성 취재·제작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KBS 두 기자에게 내려졌던 징계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데스크의 권한을 지닌 책임자라 하여도 실체적 진실과 양심에 반하는 부당한 취재와 지시를 하는 것에 대해 실무자가 이를 거부한 것은 정당한 행위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경영진, 보도책임자의 사과와 항소포기를 촉구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는 2일 KBS가 지난해 10월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홍보성 리포트 제작지시 등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문화부 송명훈, 서영민 기자에게 내린 ‘감봉 2개월’의 징계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방송 주제의 선정을 포함하여 방송의 제작 및 편성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충돌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존중되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방송에 대한 공적 신뢰가 제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사기업과 달리 표현의 자유를 존립 기반으로 하는 공영방송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피고(KBS)의 지위를 고려할 때 가치관의 충돌이나 의견의 대립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의견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고(서영민, 송명훈 기자)들은 KBS 방송 편성규약 제6조 제3항에 따라 자신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의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아 이를 거부했거나 최소한 자신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한다고 믿었다”며 “그러한 믿음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이므로, 원고들의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같이 밝히며 징계사유가 없고, KBS의 징계처분이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KBS는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상사의 정당한 뉴스 아이템 취재·제작에 관한 업무수행 지시를 수차례 거부해 징계사유가 있고, 이들 기자가 직장질서에 미친 악영향 등을 고려할 때 당초 징계처분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원고들이 뉴스 아이템에 대한 취재·제작 그 자체를 거부했다기보다는 편성위원회의 개최를 요구하면서 상사의 제작지시에 이견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KBS가 30억 원을 투자한 사실을 거론하며 “관련 리포트를 많이 한다고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원고들이 상사들로부터 또 다시 제작지시를 받게 되자 피고가 공영방송사로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가지고 방송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원고들은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이견을 표현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방송의 공정성은 구체적으로 KBS의 구성원들에 의해 실현되므로, KBS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의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지 않도록 KBS는 그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이날 징계 무효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로 당시 데스크 등 책임자들이 오히려 취재·제작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처사를 해왔음이 증명됐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편성규약을 사측 간부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고압적이고 몰상식한 태도로 일관하며 취재, 제작을 지시하고, 이에 항의하는 후배 언론인들을 징계라는 수단으로 입막은 데 대하여 심각한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KBS본부는 “그간 사측이 보인 비이성적 행태로 인해 송명훈, 서영민 두 기자는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정신적 고통 속에 휴직 중”이라며 항소 포기를 촉구했다. 또 고대영 사장과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 당시 문화부장 등 보도책임자들은 두 기자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두 기자는 KBS가 투자한 영화의 홍보성 리포트 제작지시를 거부했다가 지난해 10월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KBS 문화부 간부 등이 ‘인천상륙작전’의 흥행몰이에도 낮은 평점을 주는 영화 평론가를 비판하는 리포트 제작을 지시했지만 이들은 ‘편향된 리포트를 할 수 없다’, ‘개별 영화 아이템은 홍보가 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했다가 인사위원회에 회부, 끝내 징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