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기자 2017.05.31 14:27:17
“찝찝한 채용이네요”
“채용되면 공채와 경력기자로 파벌이 나뉠 듯 합니다”
“정권 바뀌면 어찌 될지 모르는 운명…”
“이번 채용은 자살행위다”
올 초 한 온라인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에 MBC 경력기자 채용 공지가 올라오자 언론 지망생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채용이 된다고 해도 ‘사측 인사’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는데다, 공채와 경력으로 갈라진 보도국 분위기 속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도국 밖으로 쫓겨난 지 7년
MBC는 지난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해 목소리를 낸 수십여 명의 기자들을 징계한 이후 보도국의 빈자리를 경력 기자로 메워왔다. 당시 기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사장 자리에 오른 김재철 전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7명의 언론인이 해고됐고, 100여명의 기자들이 보도와 무관한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은 경인지사, 신사업개발센터,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 이른바 ‘유배지’로 불리는 부서에 ‘돌려막기’ 형태로 전전하고 있다. MBC의 한 기자는 “상암동 안에서도 상당수의 기자들이 미래방송연구소나 예능마케팅부, 중계차 PD 등과 같이 현업에서 배제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올해 2월까지 3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안광한 전 사장은 ‘포스트 김재철’로 불린다. 그만큼 MBC의 내부 갈등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안 전 사장은 파업 때 부사장을 역임하며 징계를 주도한 인물로, 사장이 된 이후에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기자들을 재징계하고,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의 직종을 폐지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또 신입 공채를 없애고 경력직 위주의 채용을 골자로 한 ‘상시 개방형 인재 모집’을 단행, 인사평가에서 최하등급(R등급)을 맞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했다.
병들어가는 보도 그리고 기자들
안 전 사장은 내부 보도 기능을 심각한 수준으로 추락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수익과 경쟁력이 약한 조직을 축소한다는 명분으로 교양제작국을 해체시킨 탓이 크다. 당시 MBC는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1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사발령을 냈는데, 이 때 PD 6명과 기자 3명이 비제작부서로 발령받고 스케이트장 관리, 협찬 영업 등의 업무에 투입돼 논란이 일었다.
보도국은 목소리를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MBC의 한 기자는 “기사 하나를 놓고 벌어지는 평기자와 데스크 간의 치열한 말다툼은 사라진지 오래”라며 “통신사발 기사와 타사 풀로만 채워지는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간혹 단독이 나오면 정부가 아닌 기업에 대한 비판 기사”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MBC의 기자는 “데스크 지시에 아니라고 할 만한 사람은 다 빠지고 예스맨들만 뽑아서 데스킹이라는 것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고 설명했다.
무너지는 뉴스데스크의 자존심
올 3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김장겸 사장도 보도 공정성 하락의 주요 책임자로 꼽힌다. 김 사장이 임명되자마자 뉴스데스크는 선거 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25일 “특정 후보 낙선을 위해 뛰는 극우 세력의 대변인이자 기관지로 전락했다”고 반발했다.
MBC본부에 따르면 뉴스데스크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의 ‘논문 표절’ 소식을 왜곡하고,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축소하는 등 박근혜 후보에 유리한 보도를 했다.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내고 유가족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보위했으며,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는 물타기를 시도했다. 당시 김 사장은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이었다.
부실한 보도는 마봉춘을 사랑한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얼어붙게 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9일 전국가구 기준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5.2%. 종합편성채널인 JTBC뉴스룸(6.9%)에도 밀린다. 한 일간지의 기자는 “지난해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2%까지 추락한 걸 듣고 믿어지지 않았다”며 “MBC가 이렇게 망가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통이 돼버린 징계와 부당전보
김 사장은 기자들에 대한 ‘징계 전통’도 물려받았다. 지난 17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7명의 기자와 PD가 출근정지와 감봉 등의 조치를 받았다. 지난 19일에는 그간 사측의 개입이 덜했던 ‘시사매거진 2580’에 대한 손질이 이어졌다. 지난달 왕종명·김효엽 기자가 뉴미디어뉴스국으로 전보된 데 이어 이번에는 성장경 부장이 같은 부서로 인사 조치된 것. 2580의 리포터 중 가장 고참급인 권희진·민병호 기자는 보도국 편집부로 이동했다.
MBC의 한 기자는 “전·현직 노조위원장과 기자협회장이 뉴미디어뉴스국을 거쳐갔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비정상적인 물갈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내부 기자는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출입을 오래한 인물을 2580에 새로 배치시켰다. 조직의 DNA를 바꾸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정권이 바뀌었지만 사측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끊이질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격동의 6월 MBC, 들끓는 사퇴 여론
“후배의 생활은 2012년 여름부터 많이 달라졌다. 취재수첩도 노트북도 필요하지 않은 날들이 시작됐다. 얼떨떨했지만 그 땐 아무튼 이런 생활이 아주 길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5년. 30대 초반에 마이크를 빼앗긴 후배는 이제 30대 후반이 됐다…(중략) 후배의 세 번째 인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유가 없었고 전격적이었다. 선배는 그 속에서 다시는 이 자에게 기자를 시키지 않겠다는 기자의 명줄을 잘라 놓겠다는 살의를 느꼈다.”
35기 선배들은 참담했다. 이들은 지난 29일 무너져가는 후배의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실의의 감정을 기수 성명에 토해냈다. “그렇게 솎아내고 난 보도국을 무능력과 무기력이 점령했다. MBC 특유의 박동하는 생기는 꺼져갔고 뉴스데스크의 존재감은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갔다. 정신 차리고 볼 기사는 날씨밖에 없다는 조소가 억울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내달부터 상암동은 김 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들끓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 MBC본부의 한 관계자는 “기수별 성명이 최소 한 달간 이어질 예정이다. 공채뿐만 아니라 경력기자의 동참도 기대되고 있다”며 “관련 집회도 조만간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