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나이대 평범한 소녀들
숙소-경기장만 오가 안쓰러워
남북대결 무승부 염원 인상적
조직위, 취재제한 급급 눈살
“조직위 사람들이 말도 못하게 하고 사진도 못 찍게 하는 상황에서 이 친구들이 숙소와 연습장을 왔다갔다 하는 걸 보는데 우리말이 간간이 들릴 때마다 참 아련해졌다. 체제 때문에 가로막혀 있는, 그 보이지 않는 벽이 안타까웠다.”
이서영 강원도민일보 기자가 지난 1~9일 우리나라를 찾은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을 취재하고 받은 인상이다. 북한 선수단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여자 세계선수권대회(2~8일)에 참가하기 위해 개최지인 강원도 강릉에서 아흐레 간 머물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 성격을 띤 데다 북한이 참가하면서 언론의 관심은 컸다. 남북교류가 단절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어떤 ‘물꼬’가 될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도 있었다.
이 기자는 “북한 선수들이 영국전에서 3대2로 극적으로 첫 승을 거둔 날, 베스트 플레이어로 뽑힌 북한 선수가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선물로 받은 청사초롱을 켜고 흔들더라”며 “기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표현할 수 없으니까 그걸 켠 거다. 코치도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들도 반감이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장 이외 장소에서의 취재를 극도로 제한하는 보도지침을 내리는 등 오히려 통제를 한 건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를 비롯한 우리 쪽이었다”고 덧붙였다.
제한적인 접촉에 불과했지만 일부 기자들은 이번 방문에서 북한 선두들과 ‘면 대 면’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됐다. 만남이나 교류는 때로 목적 여하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임재혁 강원일보 기자는 “처음엔 좀 거리감이 있었다. 경직됐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고…그런데 남북 전 당일, 오전 훈련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나오면서 ‘반갑습니다’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더라. 말은 별로 없었지만 손을 흔들고 인사도 했다. 마음이 참 묘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슷한 나이대의 너무나 평범한 소녀들이라 오히려 의외였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관광도 자유롭게 다니는데 연습과 시합 말곤 숙소에만 있는 게 안쓰러웠다”고 부연했다.
지난 3일에는 북한 선수들이 경포 해수욕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신문 지면과 인터넷상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른 더위를 취재키 위해 해수욕장을 찾은 우리나라 기자 눈에 숙소 근처 바다를 찾은 북한선수단 30여명의 모습이 포착된 것.
지역 통신사 한 기자는 “이들이 백사장을 걷고 바다에 발을 담그는 모습을 보고 연출된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반공교육’을 열심히 받아 그런가 싶다”면서 “딱 그 또래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었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런 얘길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걸 알고 한 행동이 아니고 행동 후에 미디어가 붙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기간 중 하이라이트는 남북전이 이뤄진 지난 6일이었다. 우리나라와 북한, 네덜란드, 영국, 슬로베니아, 호주 등 디비전 2그룹 A(4부 리그)에 속한 6개국이 풀 리그를 벌이며 성사된 남북전은 공동 응원단의 함성까지 더해지며 ‘화합의 장’으로 변모됐다. 개인·가족단위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 역시 승부보다는 양측 모두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고 기자들은 전했다.
권태명 강원일보 사진기자는 “‘무승부였으면 좋겠다. 격차가 많이 안 났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경기장을 채웠던 거 같다”며 “3대0으로 우리가 이기면서 북한 선수들은 경기 후에도 상기돼 있었는데 응원만큼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기자들은 정부 관계자의 취재와 소통 제한 등 과잉 제지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북한 선수들조차 소통 의지가 있었지만 이를 가로막고 북의 대회 참가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입국부터 북한 선수단을 취재한 안병수 세계일보 기자는 “북한 선수들은 나름 스포츠를 통한 교류, 소통의지가 분명 있었다. 언론에도 적대적이지 않았다”며 “강원도가 북한 선수단 방한에 맞춰 한반도 수기를 제작하려던 움직임도 통일부와 국정원 때문에 막혔다. 이번 대회에서 남북전의 의미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단의 방한이 최초인데 이를 확장시킬 생각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