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사 최초로 지령(지면발행 일수) 3만호(6월24일)를 앞둔 조선일보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제목 오자 등의 문제가 잇달아 발생했다. 여기에 눈에 띄는 특종마저 자취를 감추면서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조선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1일자 5면 <安 “나는 유능한 후보…편가르기 정치와 싸우겠다”>는 기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인터뷰한 본문 내용과 달리 중간 제목엔 ‘문재인 국민의당 대선후보 인터뷰’로 나갔다. 앞서 지난달 20일자 1면 제목엔 <김정은, 美·中이 만나는 날에 신형 마사일엔진 실험>으로 나갔는데 이 역시 ‘미사일’을 잘못 표기한 경우다.
더구나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계열사인 TV조선 등에 이슈 선점을 뺏긴 것은 물론 청와대 ‘눈치 보기’탓에 일부러 보도를 자제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보도(2013년 9월) 이후 눈에 띄는 특종이 드물 뿐더러 채동욱 건이나 ‘우병우, 넥슨 빌딩매매 의혹’기사 역시 TV조선 혹은 타사 보도 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궁지에 몰릴 뻔 했다. 이 때문에 언론계를 주도하며 의제를 끌어가던 조선의 ‘이슈 파이팅’마저 약해졌다는 게 언론계의 평가다.
뉴스소비 중심이 종이신문에서 모바일 등으로 이동한 미디어 환경변화도 한 이유일 수 있지만 주된 원인은 될 수 없다는 게 조선 내부 기자들의 반응이다.
타사와 달리 디지털 퍼스트에 치중한 데 따른 부작용으로 돌리기에도 석연치 않다. 조선의 온·오프 전략은 ‘투 트랙 전략’이라 온라인 분야 대부분을 조선닷컴이나 디지털뉴스본부 등에서 전담하고 있다.
그보다는 변화된 시대 흐름에 뒤쳐진 조선일보의 정체성에서 비롯됐다는 게 조선 기자들의 목소리다. A기자는 “정체성이 오락가락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이슈를 선도해 왔던 것은 흐름을 잘 짚었기 때문인데 최근엔 이런 촉이 무뎌졌다”며 “과거의 습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변화된 세상을 재단하려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지난해 송희영 전 주필 사태, 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등을 거치면서 갈지자 행보 역시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B기자는 “보수 독자층을 감안해 균형 잡힌 기사를 억지로 쓰려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기사를 내보냈다”며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양쪽을 자극하지 않은 기사를 쓰려다보니 운신의 폭이 작아졌을 뿐 아니라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자들의 피로감도 누적됐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지난해 박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적잖은 가구독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문제는 조선이 안고 있는 고민이 단순히 인사 등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인 중앙일보가 전면적 디지털 이행을 통해 정체성 등을 재정립하고 있듯이 조선 역시 이런 변곡점에 이르렀다는 게 기자들의 생각이다.
C기자는 “내부에서도 예전부터 정체성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면서 “다만 단편적으로 생각해선 안 되고 종이신문이 처한 환경과 창간 100주년(2020년), 경영승계 등과 맞물려서 관련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조선 관계자는 “당 이름과 후보 이름의 순서를 바꾸는 과정에 나온 실수”라고 말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