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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친절했던 선배를 떠나보내며

故 이광형 국민일보 기자 추도사

김남중 국민일보 사회2부 차장  2017.03.08 14: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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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선배 부고를 퇴직하신 몇몇 선배들께 전해드렸습니다. ‘참 좋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빨리 갔느냐’며 다들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 후배들 감정도 비슷합니다. 이 선배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늘 친절한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나 편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선배가 이렇게 급하게, 이렇게 단호하게 우리와 이별한다는 게 낯설기만 합니다.


이 선배는 1991년 국민일보에 들어와 25년 넘게 일하다가 현직 기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선배는 사회 경력의 거의 전부를 국민일보 기자로 살았고,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보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영화 기자로 재기 넘치는 기사들을 많이 썼고, 40대 이후로는 주로 미술 기자로 일했습니다. 전공이었던 미술과 영화 외에도 공연이나 출판, 문화재까지 문화부의 전 영역을 다룬 흔치 않은 기자이기도 합니다. 이 선배는 기사를 빨리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어떤 기사에서든 공정했다고 기억됩니다.


저는 20년 가까운 기자생활의 절반쯤을 문화부에서 보냈고, 이 선배와 종종 일했습니다. 이 선배는 국민일보 문화부라는 동네의 오래된 느티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른 부서를 돌다가 아무 때나 돌아와도 문화부에는 늘 이 선배가 있었고, 저를 비롯해 많은 후배들이 그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맘껏 까불며 문화부 기자로 성장했습니다. 이광형 선배라는 오래된 나무가 사라진다고 하니 국민일보 문화부가 얼마나 쓸쓸한지 모릅니다.


제가 이 선배에 대해서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결같은 부드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이 선배의 기사나 말에서, 또 이 선배의 눈빛이나 제스처에서 독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선배는 뾰족한 게 없었고, 꼬인 데가 없었습니다. 이 선배는 술자리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주 술을 드셨지만 이 선배가 술자리에서 실수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선배는 후배들에게 오십이 넘어서도 현장에서 기자로서 재미있고 보람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분이기도 합니다. 문화부장을 지낸 뒤에는 전문기자의 길을 선택해 현장에서 기사 쓰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 선배를 보며 우리 후배들은 저렇게 평생 현장을 뛰는 기자로 살아가도 좋겠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건강만 허락했더라면 이 선배는 퇴직하는 날까지 자신의 바이라인으로 기사를 출고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후배들이 이 선배의 뒤를 따라 회사 간부가 아니라 평생 기자로 살아가는 길을 걸어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선배는 언젠가 퇴임 후에 대한 구상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중에는 전시회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선배는 화가들을 만날 때면 작품에 사용했던 붓 한 자루를 얻어 오곤 했답니다. 낡아 쓸모가 없는 붓이지만 거기에 깃든 화가와 작품의 사연을 소중히 여겼고, 그렇게 모은 붓들로 세상에 없는 컬렉션을 만들었습니다. 이 선배의 붓 전시회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볼 수가 없겠네요.


이 선배가 병원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치료를 끝내고 옆자리로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영 이별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입원하기 전에 많이 피곤해하시고 안색도 안 좋아 보였지만 이렇게 치명적인 병을 키우고 있는 줄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무심했던 후배들이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이 선배를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선배가 안식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김남중 국민일보 사회2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