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촛불집회 그리고 대통령 탄핵심판과 특검으로 숨 가쁘게 이어졌던 정치적 격변이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조기 대선으로 향하고 있다. 탄핵 정국을 관통하면서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 등 여러 부문에서 개혁 과제를 안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찾고 있다. 그 중에는 '일그러진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국정농단의 방관자이자 사실상 협력자였던 한국 언론을 되돌아보기 위해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탄핵 정국과 일그러진 언론의 초상’을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자리에 참석한 학계·언론계 관계자들은 박근혜 탄핵 국면으로 오기까지 언론이 어떤 식으로 민주주의를 파괴시켰는지 분석하고 토론했다.
주제 발표를 한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복합체’라는 개념을 들었다. 언론복합체는 언론이 권력엘리트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거부권과 결정권 등을 통해 권력을 직접 행사하고 전략적으로 국가를 관리하는 핵심 집단이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해방과 6·25전쟁,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기득권 집단이 계속 변해왔고 혼돈의 시기를 지나왔다. 언론은 그런 권력공백 상황에서 또 다른 권력으로 성장하기 좋은 상황을 맞았다”며 “언론의 정치권력화는 1992년 대선을 계기로 강화됐고 외환위기 이후 서울대 중심의 관료세력, 대기업 등 기존 세력을 비판하며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시기 국내언론은 신흥 경제관료, 법조계 및 지식권력과 결탁해 꾸준히 담론정치에 몰두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옹호했다. 정치권력, 대기업, 교육권력, 종교권력 등 파워엘리트에 유리한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과실은 따먹으면서도 부작용에는 침묵했으며 궁극적으로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신화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했다”면서 “이명박 정권 접어들어 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됐다. 무리수를 두면서 ‘종편’이 특정신문사에 간 것이 그 예”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선 나눠먹을 파이가 줄어들고 부작용이 심해지자 몇몇 언론들이 복합체에서 일탈했다. 이대로 가다간 근간이 무너진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느슨한 연대는 계속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전략적인 형태에 따라 다른 형태로 또 이합집산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석규 한겨레 총괄기획에디터도 “이번 박근혜 탄핵 사태는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을 재편하려다 파열구가 난 사건”이라며 “조선일보의 거부권 행사가 게이트의 근원적 출발점이다. 그런데 그 거부권 행사의 준거점은 사주의 이해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임 에디터는 “기자들의 취재는 사주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전락됐다”면서 “그게 바로 언론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여전히 언론은 삼성의 이재용 구속에 대해선 사실상 변호인을 자처하고 있고 이후 태극기 시위 보도 땐 양비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언론복합체가 탄핵 국면 전까지 공고했다면 이후엔 언론혁명으로 볼 건지, 보수 내의 자기분열인 건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면서도 “박근혜 정부 들어 행정부 우위가 되면서 이명박 정권 때보다 더욱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렸다. 조선일보 등은 그 때문에 이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강택 KBS PD는 정치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권력의 관점에서도 지금의 국면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PD는 “언론복합체 관점에선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의 겁박에 의해 구속당한다고 상정되는데 과연 정말 그럴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면서 “공영방송은 지금도 줄타기하면서 기회만 되면 선정성을 발휘하고 권력의 프레임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 산업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작비를 얻기 위한 협찬부터 시작해 회사의 비정규직 채용으로 인한 현장 장악력 하락 등의 결과물들이 지금의 언론”이라고 말했다.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이에 대해 “한국에선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이 전체의 30%는 된다고 보기 때문에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쉽게 분리하긴 힘들다”면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언론에 발주하는 정책홍보지, 정책 홍보성 다큐멘터리 등 정치권력에서 홍보의 외주화가 너무나 일상적”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언론인 스스로 위기의식과 성찰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주제 발표를 한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언론인들은 자기반성을 통해 언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언론노조 등을 설립했지만 이번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자기 성찰을 주도하고 있지만 KBS, MBC 뉴스가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는 증거는 없다. 일탈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는 여전하고 정치권 유착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7년 이후 언론인들의 직업적 자율성은 신장됐지만 외환위기 때 상시적 구조조정, 고용의 유연화, 무한 경쟁, 기업의 종속적 샐러리맨 의식 강화를 거치며 언론인들이 점점 더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한국의 언론인들이 더 자신감을 갖고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직업적 가치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천의 의지가 보다 뚜렷해지고 이를 자신들의 핵심적인 직업 정체성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