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17.03.01 12:23:36
“여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을 잡은 세력이 자신의 홍보나 확장을 위한 도구로 언론이나 방송을 장악하려는, 그런 낡은 질서,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송법 개정안(언론장악 방지법) 통과를 위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야당위원 14명의 릴레이 농성이 지난달 23일 마무리됐다. ‘언론장악 방지법 처리’, ‘안건조정위원 즉각 선임’, ‘신상진 미방위원장 사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국회 로텐더홀에 자리 잡은 미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 박홍근 의원을 농성 4일차 마지막 날 인터뷰했다. 그는 “방송을 권력의 품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 여도 야도 아닌 중립적이고 공정한 방송이 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미방위 소속 야당 위원들은 농성을 선택했다. 현재로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을 방증한다. 자유한국당의 심사거부로 법안 통과는커녕 논의 자체가 막혔다. 그간 자유한국당 박대출 간사 등은 ‘언론장악 방지법’의 법안심사소위 회부를 막아왔다. 같은 당 신상진 미방위원장은 이 법안의 적극적인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에 한 달 넘게 응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연설에서 “기존의 방송계를 흔들어 야당과 노조의 방송장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발언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한창 논쟁을 벌일 때만 해도 (법안 반대가) 당론은 아니라고 얘기했는데 이런 말까지 나왔다”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현실은 탄핵국면에서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냈다. KBS와 MBC 내외에서 ‘보도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촛불광장에선 국민적 지탄이 들끓었다. ‘언론장악 방지법’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해 지난해 7월 국회의원 162명에 의해 공동 발의됐다. △공영방송 이사 정수 여야 7대6 구성(기존 여야 7대4, 6대3 등) △사장 선임 시 3분의 2 이상 득표가 필요한 특별다수제 도입 △사업자와 종사자(제작·보도·편성)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명문화 등이 골자다. 지나치게 정부여당에 편중된 이사회 구성을 조정하겠다는 것, 이 구조의 다수결로 이뤄지는 사장선임 방식을 바꿔 정부여당 입김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운 공영방송을 만들어보자는 것 정도가 핵심이다.
박 의원은 공영방송 현실의 단면으로 MBC의 ‘전파 사유화 논란’ 등을 언급하며 “국민의 자산,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완전 사적으로, 특히 경영진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기 위해 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MBC는 단순히 시스템이나 사람 몇을 바꾼 정도가 아니라 ‘피를 바꿨다’는 말까지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60명의 경력직을 사장이 바뀌는 시점에 채용하는 걸 보면 국민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겠다는 걸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현재 여론지형 등을 보면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정권이 야당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인데도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법안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국면이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결국 공영방송 사장선임이 현 야당의 의중대로 이뤄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법안을 최대한 끌고 가자는 거다. KBS 사장은 내년 12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MBC 사장은 선출되면 3년의 임기가 보장된다. 현 집권세력과 임기를 같이 하며 자기들 뜻대로 방송사를 운영하고 보도나 편성에 개입을 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라며 “‘알박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법안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공영방송사 현 사장의 임기는 보장이 된다. 남은 임기 동안 ‘현 여당의 공영방송’으로 둘 수 있다는 의미다. 법안이 통과되면 3개월 내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이 다시 이뤄져야 하는 만큼 기존 체제를 최대한 오래 끌겠다는 의도로 보는 분석이다.
바른정당마저 법안처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며 이 같은 국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명시적으로 반대라고 하진 않지만 언론 등을 통해 확인된 건 부정적으로 나온다”며 “자유한국당이 적극적 부정 반대라면 바른정당은 소극적 부정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른정당만 협조해도 상임위원 3분의 2, 본회의 전체의원 3분의 2 동의로 할 수 있는 제도, 즉 국회법상 안건의 신속처리에 대한 조항(패스트 트랙)을 적용해볼 수도 있다. 최대 330일이라는 기간은 걸리지만 활용할 여지가 있는데도 비협조적인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법안 통과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될 수 있을까. 박 의원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공영방송의 과거에 대해 “그 부분은 야당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지만 그런 유혹을 이젠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 뿐 아니라, 우상호 원내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의 입장도 분명하다”며 “그 입장은 확고하다고 믿어도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