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일어난 ‘촛불 민심’은 살아 있는 권력 등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에도 큰 울림을 전했다. 언론 보도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실상이 드러났지만 권력 감시를 소홀히 하고 권력의 힘이 약화되자 뒤늦게 보도 경쟁에 뛰어든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우리 언론은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 사회를 반목과 갈등으로 몰고 간 해묵은 ‘편가르기’식 보도를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촛불 민심이 언론에 응원과 지지를 보낸 이유는 정파성을 뛰어넘는 보도 때문이었다. 이와 반대로 일부 지상파에 질타가 이어진 것은 권력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박성호 MBC 해직기자는 “방송사 책임자들은 시청자들이 말초적인 것을 원하기 때문에 골치 아픈 내용보다 생활밀착형 아이템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촛불민심을 통해 권력을 제대로 비판하고 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보도하는 방송사에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시청자들이 정말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입증하게 된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과반수 국민의 반대에도 국회가 통과시킨 2004년 탄핵 정국에서 우리 언론은 실타래를 풀어가는 역할보다 진영논리에 따라 상황을 더욱 얽히고설키게 했다. 그 결과 신문·방송 간, 신문 간 갈등이 격해지고 진영논리가 굳어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문제는 이런 일탈된 언론보도 행태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언론계의 편가르기와 정치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이 재결합하면 언제든지 ‘제2,3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촛불 민심을 목도한 기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언론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 한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도 우리 언론이 친정부·친정권적인 보도를 하다 판이 뒤집히면서 정론지인양 변신했다”며 “지난 9일 탄핵 가결 이후 일부 신문들을 중심으로 이전과 같이 대선에서 누가 유불리하다는 식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언론이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국론을 모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각계 원로들의 고견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보도도 눈에 띄었지만 대선 시계가 앞당겨짐에 따라 잠룡들의 움직임, 각 당의 이합집산 등에 대한 보도비중 역시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부터 새누리당 비박계와 친박계 간 내분 등을 전면 배치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대선 국면에서 이런 보도 역시 불가피하지만 과도하게 매몰된 나머지 갈등에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증과 무관심 등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 경제지 고위 간부는 “벌써부터 일부 언론사는 대선 국면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면서 정국을 이끌려 한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경우 언론 보도가 촉매제가 됐지만 권력을 끌어내린 동력은 국민의 힘과 SNS의 전파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언론도 과거보다 힘이 떨어진 어젠다 세팅 기능에 대한 현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본연의 기능인 팩트 파인딩의 역할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초 예상보다 빨라진 차기 대선 국면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향후 언론을 바라보는 민심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유력 매체들이 지난 미국 대선에서 ‘바닥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했던 전철을 우리 언론도 그대로 답습할 경우 회복세인 언론 신뢰도에 찬 물을 끼얹은 셈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심 역풍을 맞은 언론사들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을 뿐더러 과거와 달리 ‘회복 불능’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지난 8일 2%대(tnms 기준)까지 곤두박질친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자사회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저널리즘 개념 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세월호 당시 우리 언론이 반성과 참회 등을 통해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어 가시적 성과를 냈듯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저널리즘을 정립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어서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 국장은 “그로기 상태인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이 국면이 지나면 우리 언론이 권력을 어떻게 감시하고 보도하는지에 대한 시험대에 또 다시 오르게 될 것”이라며 “세월호 당시 언론이 반성을 거쳐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해 성과를 냈듯이 권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방법론과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