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끄고 공영방송 켜자!”
“언론 부역자 청산하자! 고대영은 집에 가라!”
광화문을 수놓았던 촛불들이 24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다시 켜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추위와 삭풍에도 100~150여명의 손에 들린 촛불은 자꾸만 번져 나갔다. 흔들리되 꺼지지 않았다. 이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국민의 방송’ KBS와 ‘만나면 좋은 친구’ MBC가 다시 국민의 품으로, 좋은 친구로 돌아오는 것. 이명박 정부 이래 ‘급격히 망가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공영방송사들은 최근 ‘박근혜-비선-재벌 게이트’가 터지고서도 ‘참사’ 수준의 보도를 선보이며 그간의 행보에 국민적 질타를 받아왔다.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쫓겨나고 자사 로고를 가린 채 리포트를 하는 수모를 겪는 게 공영방송사 현실의 일면이다.

박근혜 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고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가 주관한 ‘박근혜-언론 게이트 진상규명과 언론 부역자 청산을 위한 촛불 문화제’, 현 국면에서 촛불이 특정 언론사 앞에서 처음으로 불을 밝힌 데는 이 처참한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간절한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 열망은 언론인들만의 것이 아닌 온 시민들의 것이었다.
대학생 백희림(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씨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언급하며 공영방송사의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교훈은 보통 정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년이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세 번 반복됐고, 결국 그 공동체는 양을 잃고 와해됐다. 처음부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임은 공동체 모두에게 있다”고 밝혔다.
백씨는 공영방송사의 현실에 대해서도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공영방송이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것이었다면 ‘세월호 7시간’이 아직도 비밀일 수 있을까. 7시간이 베일에 쌓여있다는 건 (그 자체로) 2년 째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잘못이지만 잘못을 알면서도 가만히 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진 자들이 한덩이가 돼 지켜오던 게 이제 막 수면위에 오른 상황에서 (이 모든 걸)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백씨는 발언 말미에 “어떤 정치인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던데, 우리는 촛불만 밝히는 게 아니라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우리나라에 큰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바람 그 자체고 이 바람은 촛불을 끄는 게 아니라 박근혜를 끌 수 있다”면서 “언론문제를 두고 이렇게 촛불을 밝히는 게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고등학생 고송희양(경기 군포시 흥진고등학교)은 언론인들에게 싸워달라고 했다. 더 싸워달라고 했다. 예전 좋은 ‘친구’를 되찾게 해달라고 했다. 고 양은 어린 시절 경험을 꺼내놓으며 “TV는 제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겐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서서히 변해갔다. 귀와 눈을 닫고 보이지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친구였던 우리에게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상처와 배신감만 준 채 등을 돌려버렸다. 친구란 말보다 배신자란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고 양은 “KBS, MBC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니 대표‘했던’ 언론이자 세상을 공정하고 진실된 눈으로 봐야하는 공영방송이다. 자신들도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인가, 최순실 씨인가”라며 “국민이 원치 않는 언론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기에 아릅답다고 한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실을 위해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싸워달라.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뭔지 확실히 보여달라. 언론은 누구의 통제도 간섭도 없이 온전히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극우, 혐오 발언으로 몰의를 일으켜 온 조우석 KBS이사 등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김수환 활동가는 조우석 이사가 공영방송사 이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방송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활동가는 “조우석은 극우세력 주최 토론회에 참가해 성소수자들을 향해 더러운 좌파라고 하고, 더러운 걸 더럽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했으며, 인신공격, 모독을 쏟아내고 동성애자들의 최종 목표는 국가전복이라고 말했다”며 “성소수자 혐오, 에이즈 혐오, 빨갱이 혐오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저열한 인식의 향연이자 전형적인 메카시즘 마녀사냥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 활동가는 “방송법은 방송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KBS는 모든 방송 중 공적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임이 가장 큰 공영방송이며 그걸 관리감독해야 하는 자리가 KBS이사직”이라며 “본인이 앞장서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는 조우석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퇴진 영등포 시민행동의 정재민씨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마비 사태를 보면서 권력을 감시하는, 자본을 감시하는 언론이 역할을 했다면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라면서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게 끝이 아니라 언론 부역자도 다 청산시키고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인 여러분 싸워달라”고 했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KBS를 찾아 촛불을 든 이들에게 “죄송하고 면목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성 본부장은 “8~9년 전에 촛불이 여기 있었다. 당시에는 KBS를 지켜내자는 거였다. 간간이 파업을 할 때도 촛불시민들이 오셔서 조합원들을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셨다”면서 “사실 KBS는 사태가 계속 나빠졌다. 오늘은 왜 오실까, KBS에 뭘 기대하실까. 손에 촛불을 들고 계시지만 횃불을 들고 싶지 않았을까, 몽둥이를 들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앞서 진행된 민주언론상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과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의 도화선이 된 한겨레 시상식이 있었다. 그걸 KBS 앞에서 보며 수백명 기자 PD가 있고 6000억원 넘는 수신료가 모이고 1조 넘는 매출이 있는 우린 뭘했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늑장보도, 부실보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한 가지다. KBS내에 수많은 부역자가 있고, 박 대통령이 지명하는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기 때문”이라며 “낙하산 사장, 부역자가 공영방송 안에 있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되는 시점이다. 통과시키는 데 제일 앞장 서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 역시 지상파 방송사 보도의 하향평준화 경쟁을 비판하면서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윤 본부장은 “낙하산 사장이 내려와서 방송을 말아먹는 와중에 ‘우리는 그래도 낫다’라는 알리바이로 자기정당화를 하며 방송을 망치는 일이 셀 수도 없이 반복됐다”면서 “이런 구조를 내버려두면 제2, 제3의 박근혜가 나와 겁박을 하고 눈과 귀를 가리는 행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구조 개선이 이뤄지는 데 SBS본부도 함께 어깨를 걸고 열심히 싸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