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을 갖기는 어느덧 사치가 돼버린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도 국민의 한사람으로 주권 행사를 하고픈 강한 떨림을 느낍니다. 광화문 광장에 함께 동참하지 못한 죄스런 마음에 이렇게라도 동참합니다.”(ID 세상살이)
“언론이 돈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 협박으로부터, 인사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지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미래만은 지켜야하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지켜주십시오.”(ID 일지매)
오마이TV를 통해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을 시청한 시민들이 10만인클럽 회원에 가입하면서 남긴 글이다. 오마이TV는 지난 12일 100만 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대규모 촛불시위를 16시간동안 생중계했다. 전 세계 212개국에서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시청한 시민들은 후원의 뜻을 밝혔다. 현재 오마이뉴스에 매월 만 원 이상 정기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은 1500여명. 집회 기간에만 640명이 늘어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이후 뉴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미디어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다. JTBC ‘뉴스룸’은 지난 9월 1일 기준으로 전국단위 시청률 3.39%에서 지난 1일 8.45%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날 MBC뉴스데스크(7.8%)와 SBS8뉴스(6.3%)도 소폭 오르긴 했으나 JTBC 뉴스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 보도한 지난 1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대통령의 시크릿’편은 전국 평균 시청률 19%를 기록하며 평소 시청률(6~8%대)의 2배를 훌쩍 넘겼다.
서초구의 최모(32)씨는 “일단 콘텐츠의 싸움에서 이겼고 ‘손석희’라는 브랜드도 한 몫 한 것 같다”며 “누가 무엇을 보도하는지, 결국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주목받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촌동에 사는 장모(40)씨도 “‘역시 JTBC구나’ ‘저력이 있구나’란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 이후로 단독 보도를 한 JTBC 뉴스룸과 TV조선 뉴스판을 매일 보고 있다. 주요 일간지 1면도 꼭 챙겨보게 됐다”고 했다. 미디어스타트업 창업을 준비 중인 양모(40)씨는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연령을 초월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온라인미디어를 소비하던 젊은 층이 최순실 관련 기사를 보기 위해 주요 일간지와 종편에 몰렸고, 기존 미디어를 소비하던 노년층의 충성도도 더욱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위기란 말이 무색한 시기다. 신문 부수 감소와 시청률 추락으로 고전을 거듭해온 언론사들이 대형 이슈를 연일 보도하며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김민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홈페이지 페이지뷰(PV)가 9월에 비해 30~40% 뛰었다”며 “제보도 꾸준히 들어와 지난주에 특종을 내기도 했다”고 했다. 유재형 한겨레 판매기획부장은 “평상시보다 자발적 구독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특별취재팀을 격려하는 메시지나 메일도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구독률 하락의 늪을 면치 못하고 있는 주간지의 경우에도 최근 고무적인 분위기다. 고제규 시사인 편집국장은 “후원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 이후 계속 들어오고 있다. 대개 대선 때 뉴스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하락세가 주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건 같은 경우에는 소폭 상승한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의 선전도 두드러졌다. 특히 TV조선은 지난 7월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 <의문 투성이 쌍둥이 재단 ‘미르·K스포츠’> 등의 리포트를 내놓으며 최순실 게이트의 물꼬를 텄다. 이상목 TV조선 보도운영부장은 “타사 기자들이 ‘청와대와 정면 대결하다니 언론 본연의 자세를 지켰다’는 반응을 보이고, 내부에서도 자부심을 느낀다는 후배들이 많아 뿌듯하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언론이 책임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뉴스 소비가 늘어나고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입을 모은다. 박진수 YTN 노조위원장은 “지난 8년간 파업 이후 해직 사태를 맞이하고 침체돼 있던 분위기가 상당히 진일보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보도국 기자들이 최선을 다해 대응해 촛불 시위 때 순간 시청률 6%를 찍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결국 저널리즘의 본질에 해답이 있다”고 말했다. YTN의 또 다른 기자도 “이번 일을 계기로 중요한 것은 저널리즘 본연에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