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최순실로 시작해 최순실로 끝난다. 타사 보도를 확인하기 두렵다.” 종합일간지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을 전담하는 A기자의 하소연이다.
기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되는 최순실 정국에서 전례 없는 보도 경쟁에 휩싸여 있다. 매일 나오는 단독에 하룻밤 사이에도 수차례 물을 먹이고(특종), 먹는(낙종) 일이 벌어진다.
모든 언론사가 최순실 관련 보도를 쏟아내면서 언론사나 기자, 기사에 대한 평가도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특히 뒤늦게 취재에 뛰어든 기자들은 더 큰 부담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종합일간지 사회부 B기자는 “하루 동안 각 사가 출고하는 관련 기사만 수십 개다. 의미 있는 보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다”며 “담당 기자들은 매일 타사 보도를 두고 ‘소설을 썼네, 이건 잘 취재했네’하며 비교한다. 독자들도 우리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언론사 대부분은 TV조선 이후 한겨레의 잇따른 보도에도 뒷짐 지고 있었다. 그러다 10월26일 JTBC가 연설문 개입 정황 등이 담긴 최순실 컴퓨터 파일을 공개하자 부랴부랴 특별팀을 만들고 취재에 들어갔다.
후발주자 기자들은 선발 언론사를 뛰어넘는 취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TV조선, 한겨레, JTBC 등이 취재원과 자료 등을 선점했다는 이유에서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나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처럼 굵직한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관련자와 접촉이 쉽지 않았다”며 “이미 수차례 언론과 인터뷰를 한 데다 아예 번호를 바꾸고 잠수 탄 이들도 있다. 한참 늦게 합류해 바로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윗선의 직접적인 단독 요구에 압박을 느낀 기자도 있었다. 주간지 D기자는 “갑자기 최순실 취재에 매달리라는 지시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왜 단독이 없느냐는 질책을 들었다”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사들이 나오는데 심층취재를 해야 하는 주간지 기자 입장에서 난감하다.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잡히는 게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현장 기자들은 취재팀을 이끌고 이슈를 주도할 선배들의 부재에도 불만을 내비쳤다. 실제로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와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의 진두지휘가 주목을 받았다.
종합일간지 사회부 E기자는 “연차별로 할 수 있는 취재가 다르지 않나. 우리회사엔 취재방향을 제시해주는 선배가 없다”며 “우리는 왜 기사가 없느냐, 센 것 가져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기력감이 든다. 장기적으로 맨파워를 가진 기자가 한 명도 없는 회사의 미래가 두렵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뒤늦게 나서 힘든 점도 있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방송사 F기자는 “워낙 사안이 복잡하고 커서 선배들의 고공취재에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느냐에 달렸다는 생각”이라며 “단독 경쟁에 목매면서 이미 나온 보도를 따라가기보다 타사가 미처 보지 못한 구멍들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