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부터 시작된 ‘파리 모터쇼’.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로 내년 세계 자동차 시장 트렌드를 조망할 수 있는 행사다.
예년 같으면 언론사들이 국내외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의 지원을 받아 파리 모터쇼에 참가했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이번 행사에는 전자신문 등 일부 언론사만 자사 부담으로 참가했다.
제네바 모터쇼 등에 비해 행사의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때문이다. 법 시행 탓에 기업으로부터 제공받은 취재 편의 등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청탁금지법 실시 이후 해외 연수나 취재 등에서도 언론사 간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현금으로 주는 취재비 외에 기자들에게 지급된 법인카드의 한도를 높이거나 사용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 등을 통해 사실상 취재비를 늘리고 해외 출장이나 연수 역시 회사 비용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정했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기자와 PD, 미디어 경영직이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국내와 해외 장·단기 연수는 물론 각종 역량강화 기회가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일이 없도록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식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사내 장기연수 제도를 갖춘 언론사는 연합뉴스(국내연수 전환 검토), 중앙일보, KBS, SBS 등 극소수다. 조선도 2009년 자체 해외연수 프로그램(3~6개월)인 ‘글로벌챌린지 프로그램(GCP)’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반면 경영상황이 여의치 않은 언론사의 경우 자체 연수제도 운영은 고사하고 해외 출장기회 축소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 비용으로 해외취재를 보낸다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기회 축소는 물론 한번 출장을 갈 경우 두루 취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취재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지면 경쟁력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게 기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해외 연수나 취재가 지면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도 있지만 기자 사기엔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 여파가 기자 이직으로 이어질 경우 조직 입장에선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것.
한 경제지 기자는 “그동안 기업들이 보내주는 해외출장의 의존도가 높았다. 앞으로는 회사 비용으로 가야 하는데 회사가 얼마나 승인해줄지 의문”이라며 “김영란법 이후 취재비를 인상해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인상분을 본봉에서 깎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용 등을 감안해 프리랜서 기자나 작가 등에게 돈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사오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여행담당 기자는 “해외출장을 회사비용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반면 법 적용을 받지 않는 프리랜서 작가는 기업 등으로부터 해외출장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을 주고 이들의 콘텐츠를 사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들의 취재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기사를 좀 더 객관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손꼽힌다. 예컨대 경향신문이 올 초 선보인 창간 70주년 기획 ‘행복기행’과 같은 시리즈가 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자동차 담당 기자는 “현장에서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볼 수 있고 평소 만날 수 없는 주요 자동차 메이커 CEO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해외출장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반면 당당하게 취재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자체 비용을 댄 해외 기획취재 등이 포털 등으로부터 제 값을 받아 콘텐츠에 재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론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이에 한 언론사 경영기획실장은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출장을 많이 갔던 언론사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며 “대부분 언론사들은 사례가 쌓일 때까지 추이를 지켜보자는 게 현재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