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영 기자 2016.10.04 21:34:25
미르·K스포츠재단의 실체를 처음 폭로한 곳은 TV조선이었다. TV조선은 지난 7월26일 재단과 대기업 관계자들의 발언을 토대로 미르재단이 두 달 만에 486억원을 모았고 여기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8월2일에는 K스포츠재단에도 똑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TV조선은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이 단시간에 거액을 출연한 점, 재단 출범에서 설립 허가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 점 등이 쌍둥이 같다며 배후에 동일인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후에도 TV조선은 두 재단과 청와대의 관련성에 중점을 두고 후속보도를 이어갔다.
줄기차게 이어지던 TV조선의 미르·K스포츠 단독보도는 8월18일 이후 사라졌다. 이 무렵 청와대는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의 강남 부동산 의혹을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를 직간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합작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면서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뒤이어 송희영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폭로가 나왔다.
이후 TV조선은 국회 대정부 질문, 국정감사 등을 따라가는 선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보도를 했다. 일각에서는 송 전 주필 외에 청와대가 쥐고 있는 카드가 아직 더 있다는 풍문이 나돌았고, 내년 3월 종합편성채널 재허가를 받기 위해 조선이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를 이끌었던 기획취재부장이 인사 발령 나면서 관련 보도가 더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개입했다고 보도한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는 지난달 29일 칼럼을 통해 TV조선 보도에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뒤를 좇다 보니 ‘잃어버린 고리’가 두세 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건의 전체 모자이크를 끼워 맞출 수 있는 ‘결정타’들”이라면서 “조선이 물증을 확보한 듯한데 보도는 실종됐다”며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결단을 내리길 촉구했다.
김 기자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대형 권력형 비리가 있으면 언론사들이 모두 달라붙어 하나씩 조각을 맞춰 가면서 전체 그림을 그렸다. 조선에서 밝혀내면 그걸 토대로 우리가 한 발짝 나아가고, 우리가 한 발짝 나가면 조선에서 그걸 토대로 다른 것을 밝히면서 같이 힘을 합쳐보자는 의미로 칼럼을 쓴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결정타인지 말하기는 힘들지만 조선이 먼저 취재를 함으로써 저희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가 ‘결정타’라고 말한 것처럼 TV조선은 비선실세의 실체와 관련된 구체적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장기간 취재한 TV조선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사업, 국가브랜드 사업 전반까지 취재 그물망을 폭넓게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후속 보도 여부에 대해 TV조선 관계자는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다만 실체를 보고 취재한 거지, 허상을 따라온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TV조선 또 다른 관계자는 “7~8월 보도할 때는 다른 언론사들이 일체 받지를 않아 지속적으로 보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한겨레 보도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타이밍을 보고 있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