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20kg 갑옷 입고, 펜싱칼에 찔리고…체험 기사 봇물

기자가 직접 체험, 현장감 살려
취재 과정 고스란히 담겨 공감
기자 브랜드화 기여 목소리도

김달아 기자  2016.09.20 21:50:38

기사프린트

#1 한 이탈리아 식당에 자리 잡은 세 여성. 각각 마주한 남성과 악수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명함을 주고받고 있다. 점심시간을 활용한 직장인 미팅 현장이다. 이들의 표정에서 얼핏 설렘이 느껴지지만 여성 3명은 ‘런치 미팅’을 취재하고 있는 동아일보 기자다.


#2 펜싱복을 입은 한 여성이 펜싱선수가 휘두르는 칼을 온몸으로 맞으며 “아악!” 비명을 지른다. 펜싱칼에 찔리면 얼마나 아플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체험에 나선 중앙일보 이어진 기자다. 동영상 속 땀범벅된 기자는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진짜 힘들고요. 팔이 너무 아픕니다.” 취재 후 기자는 결론을 내린다. ‘펜싱칼에 맞으면 눈물 나게 아프다.’


기자가 ‘온몸으로 만드는’ 체험형 콘텐츠가 눈길을 끌고 있다. 관찰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돼 현장의 생생함을 높이는 방식이다. 특히 바이라인 뒤에 있던 신문기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얼굴을 비추면서 독자(시청자)와 교감하고 있다.



지휘자부터 수문장까지 ‘기자=취재원’
체험형 콘텐츠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동아일보다. 문화부는 지난 1월부터 기자가 각종 문화현상을 체험하고 실험해보는 코너 ‘문화 실험실’을 연재하고 있다.


기자들은 일반인이 하는 팟캐스트 진행자로 변신하거나 지휘자에 도전해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국립발레단 공연 출연자로 직접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직장인 런치 미팅’에도 참여했다. 임금 수라상과 노비 밥상을 앞에 두고 영양성분을 비교분석했고, 한여름 20kg이 넘는 조선 후기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체험기를 내놓는 등 모두 22개 체험·실험을 진행했다.


머니투데이도 찜통더위가 지속되던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폭염 속 극한 알바’ 시리즈를 선보였다.
땡볕에 호위무사 복장을 껴입고 수문장 알바를 체험한 윤준호 기자는 기사에서 “숨이 턱턱 막혔다. 흐르는 땀에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 온몸은 5분도 안 돼 땀범벅”이라고 했다. 시급이 1만원이라는 명동 화장품 알바, 20kg 맥주통을 메고 한 잔 당 800원을 남기는 야구장 맥주 보이, 민속촌 거지 분장 알바를 체험한 기자들은 폭염 속 알바들의 고충을 기사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한소범 한국일보 기자도 지난달 무더위에 3.5kg 인형탈 알바 체험기를 썼고, 이달 초 정은주 한겨레 기자는 지하철 천장 청소를 체험하면서 이 작업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지면·동영상에 등장한 신문기자 ‘현장감↑’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체험형 기사에서 더 큰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기자가 직접 취재한 ‘티’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취재기자가 관련 사진에 등장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문화 실험실’이나 알바 체험 기사 대부분엔 기자의 얼굴이 드러나 있다.


머니투데이 극한 알바 체험기를 담당했던 박종진 기자는 “체험하는 순간만큼은 기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처지에서 현장을 바라볼 수 있다. 멀찍이서 하는 취재와 전혀 다르다”며 “독자들은 그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배중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는 “무언가를 체험하는 기자의 모습을 기사와 사진에 담는 이유는 독자에게 직접 취재했다는 신뢰를 주고 싶어서”라며 “체험기는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쓰지 않는다. 취재를 마친 뒤 기자의 시각으로 현장감을 불어넣으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지면을 넘어 동영상으로 체험기를 풀어냈다. 지난달 올림픽 기간 제작한 ‘펜싱칼 찔리면 아플까? 앞은 보일까?…기자가 직접 해봤습니다’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중앙일보가 올림픽 특집으로 만든 다른 콘텐츠들보다 5~6배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중앙일보 디지털 담당 관계자는 “독자들은 기자가 취재를 위해 얼마나 품을 들이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방송기자는 리포팅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신문기자는 바이라인뿐이라 자료를 보고 기사 쓴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라며 “해당 동영상에는 취재 과정과 체험한 기자의 느낌, 표정, 상황이 그대로 나타나 여기에 독자들이 공감한 것 같다”고 밝혔다.

진화하는 콘텐츠…독자 관심 끌수 있을까
체험형 기사가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쉽게 볼 수 있는 르포나 자동차 시승기, IT제품 사용기도 모두 여기 포함된다. 하지만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구현되며 진화하고 있다. 기명 칼럼을 제외하면 지면에 얼굴 비출 일 없던 신문기자들이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큰 변화다.


종합일간지 주니어 기자는 “무한도전 김태호 PD나 1박2일 나영석 PD가 본인이 연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며 커온 세대라 신문기자가 지면에 나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며 “최근 이런 모습이 눈에 띄는 만큼 선배들의 인식도 점차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자 브랜드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체험형 기사 경험이 있는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는 “기사에 얼굴이 나와도 되겠느냐는 의구심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완성된 기사를 보니 현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앞섰다”며 “신문기사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진 상황에서 현장감 넘치는 기사와 신문기자의 지면 등장이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