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닌 글을 쓴 건 5년 만이었다. 머리가 복잡해 어디에든 글을 쓰고 싶었다. 지난 2월 이성규 국민일보 기자는 페북에 '나는 아빠다'라는 제목을 달고 긴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곤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너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 네가 다시 건강해진 것이 아빠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빠다."
그의 둘째 딸 인영이는 급성 림프모구성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다. 지난 2월 세 살배기 딸의 백혈병 확진은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게 자신의 탓만 같았다. 첫째 딸 윤영이는 직접 육아휴직을 할 정도로 금이야 옥이야 키웠지만 인영이에겐 그러지 못했다. 한없이 미안한 마음에 몇 날 며칠 눈물을 쏟았다.
"이번 여름 미국 연수를 앞두고 있었는데 청천벽력이었어요. 아이가 당장 눈앞에서 사라질까 겁부터 났습니다. 부랴부랴 인영이를 입원시키고 며칠이 지나니 정신이 들더군요. 인영이가 건강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해야겠다 싶었죠. 글을 쓰면서 답답함을 풀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한 겁니다."
글을 본 지인들과 동료들은 그에게 위로, 용기의 말을 건넸다. 국민일보 노조와 정부세종청사 기자들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노조는 치료비와 헌혈증을 모금해 이 기자에게 건넸다. 그와 함께 세종청사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헌혈차를 불러 직접 헌혈에 나섰고 정부부처 직원들까지 동참했다.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세종청사 기자단은 인영이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아내가 "매일 술 먹고 오더니 기자들 의리 있네"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선후배들에게 잘한 것도 없는데 염치없이 도움만 받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이 페이스북이나 전화, 문자로 연락해주실 때마다 큰 힘이 됩니다. 언제가 꼭 보답해야죠."
회사의 배려도 크다. 세종팀장을 맡아 대전에 거주하는 그가 인영이 치료차 서울에 갈 때마다 해당 병원기자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선배 일까지 도맡아 준 세종팀에겐 늘 고맙고 미안하다. 그는 "다른 회사였다면 이런 배려는 없었을 텐데…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인영이 치료가 조금씩 안정되면서 기획 아이템을 생각할 여유도 생겼다. 이젠 물 그만 먹어야 한다"며 크게 웃었다.
인영이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어느덧 5개월째. 그간 가족의 삶은 달라졌다. 양갈래 머리가 어울리던 인영이는 까까머리가 됐다. 은행원이던 아내는 휴직해 늘 인영이와 함께다. 아홉 살 첫째 딸은 외조부모와 지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족애는 커졌다. 2년 9개월로 예정된 치료 기간을 "인생의 공백기"로 생각했던 그도 "인영이가 아빠를 철들게 한 시간"이라고 미소 지었다.
그는 소아병동에서 세상을 마주하니 기자로서 무감각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병원의 불합리한 관행, 전국적으로 부족한 소아 무균병동, 막대한 치료비에 고통받는 아이들과 부모들. 이 기자는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는 만큼 건강보험 등 재정적인 문제를 짚어볼 생각이다. "국가가 아이들의 치료비를 지원해줄 수 있는지, 허튼 곳에 새는 돈이 있는지 취재하고 싶어요. 어린이 경제 전문 기자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페이스북에 써온 ‘나는 아빠다’는 50회를 넘어섰다. 지난달부턴 국민일보 온라인에도 연재한다. 투병기를 토대로 일종의 보호자 매뉴얼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확진 직후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봤는데 어떤 게 맞는지,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정확한 사실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도움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습니다.”
아직도 주사나 채혈로 아파하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 아프다. 그래도 아빠 품에 안겨 까르르 웃는 인영이 덕에 힘이 난다. “인영이는 성격이 쾌활해 기자가 잘 어울린다”며 웃는 그에게서 딸을 향한 사랑이 듬뿍 묻어났다. “이제 울지 않고 항상 웃으려고 노력해요. 이겨내야죠. 저는 아빠니까요.”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