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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광주 항쟁은 시민과 언론인들의 항거"

제36주년 5.18기념 내·외신기자 초청행사

최승영 기자  2016.05.16 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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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항쟁 시기 내·외신기자들 초청행사 자리에서 당시 전국 언론인들이 검열항의와 정권퇴진, 언론자유 보장을 촉구하다가 “불법해직과 영구취업 불가” 등의 조치를 당했다고 밝혔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이날 외신기자들에게 당시 국내 언론 투쟁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전국 언론사 기자들은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계엄 하에서 강행된 검열을 거부하고 제작에 불참하는 투쟁을 벌였다”며 “광주항쟁기간 동안 신군부에 저항한 세력은 광주 일원의 시민들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언론인들이 유일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는 언론사 사장 등을 불러 ‘기자들의 검열 거부 투쟁 등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하고 일부 주요 언론사 입구에 장갑차와 군인을 배치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언론인들은 이런 신군부의 만행과 탄압에 굴하지 않고 언론자유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1000여 명이 불법해직 당해 ‘영구 취업 불가’와 같은 생존권 위협에 직면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 같은 격렬한 저항의 원인에 대해 이들은 “박정희 암살 이후 언론자유 운동이 거세게 일었고, 특히 외신이 광주 참상을 보도하는데 국내 언론만이 보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언론인들의 분노와 울분이 폭발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의 언론사에서 가장 대규모로 벌어진 언론 민주화 투쟁으로, 세계 언론사에서도 그 유례가 드문 언론인 항거였다”고 부연했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또 광주항쟁과 80년 언론인 해직이 같은 시기 같은 취지로 발생한 사안인데도 언론인들은 1990년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는 “광주 항쟁을 광주지역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반민주세력과, 언론인 대량 학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 ‘제도언론’의 집요한 책동이 가져온 불행한 결과”라고 전했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이날 ‘‘80년 5월 광주’를 왜곡·폄훼하는 일부 세력은 엄단돼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할 초등학교 6학년 사회과 교과서에서조차 광주민중항쟁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숨지게 한 계엄군의 사진과 계엄군 용어 자체가 사라지고, 사실 관계가 편향되게 기술되는 등 심각한 축소와 오류에 대해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즉각 대응에 나선 것 등을 보면서 크게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해직된 9인은 성명서 낭독에서 “80년 5월 신군부의 폭압적 만행을 현장에서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생명을 걸고 취재했던 우리들은 광주 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그 어떤 왜곡이나 폄훼가 더 이상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역사의 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천명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는 성명서 말미에서 “비판과 감시를 사명으로 여겨 온 언론인으로서 다음과 같이 비이성적 행위들의 자제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정부의 올바른 5.18광주민중항쟁 역사기술, 언론계의 자성, 지구촌 곳곳의 언론인에 대한 탄압 종식 등을 염원했다.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대표는 이날 시민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당시 언론인으로서 너무 분했다.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사실에 참담하고 죄송했다”면서 “광주항쟁은 지역 항쟁에 언론의 투쟁도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 그것이 광주 항쟁의 전모”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0년대 투쟁 언론인들이 거의 70세 이상인데 수명이 다하기 전에 ‘역사 바로잡기’를 하는 것이 50년, 100년 후 후손들에게 광주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열심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