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기자 2016.04.20 13:39:35
“대부분 150~160석을 예상했는데 120석은 충격이었죠.” 한 일간지 정치부 A기자는 새누리당의 참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여당팀 기자로서 그 누구보다 총선 판세를 가깝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A기자는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과반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현재 기성 여야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크고, 당의 정체성이나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 여부를 떠나 제3당에 대한 열망이 이번 총선에 반영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뜻밖의 결과였다. 아무도 ‘여소야대’ 상황이 연출될지 몰랐다. 기자들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한 지상파 정치부 기자는 “오전까지만 해도 당내에서 160석 안팎의 얘기가 나왔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아무래도 그동안 여당에서 해온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주간지 기자는 “주변 선거캠프에 있는 사람들의 열망과 좌절감, 분노, 억울함 등을 지켜봤다. 이런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몰라 다들 멘붕인 것 같다”며 “보수가 아닌 야당이 결집된 역사적인 선거”라고 평했다.
기자들은 뒤바뀐 20대 총선 결과를 놓고 여론조사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일제히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은 100석 내외를 얻을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 1월부터 총선 당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는 1440여개. 하지만 이 중 여소야대를 예측한 여론조사는 단 한 개도 없었다.
기자들은 현 여론조사 방식인 집 전화 임의걸기(RDD) 방식이 응답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지상파 기자는 “유선전화방식의 여론조사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본다”며 “현 여론조사가 얼마나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유선 전화 방식은 고연령층의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 야권 지지층의 응답률이 저조하다는 점에서 여권 편향 결과를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서울의 한 30대 유권자는 “젊은 사람들은 집 전화를 거의 안 쓰는 걸로 알고 있다”며 “그런 의미 없는 여론조사를 믿고 오차도 별로 없는데 ‘1위다, 2위다’하는 마구잡이식 보도는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한계가 드러나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목소리가 높다. 현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여론조사 방법은 휴대전화 안심번호제. 하지만 이는 선관위의 제재로 실제 여론조사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선거법상 이동통신사가 안심번호를 정당에만 제공토록 하고 있는 만큼 공표할 수 없다는 것.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최정묵 부소장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안심번호를 이용했더니 결과가 거의 근접하게 나왔다”며 “안심번호를 일반 여론조사 기관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여론조사 개선은 물론 언론보도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여론조사 보도의 경우 얼마든지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유독 잘못된 여론조사를 그대로 퍼나르고 정책, 공약 보도보다는 판세 분석에만 치중한 경마 저널리즘이 활개를 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종편 기자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료를 보도하고, 자극적인 입담을 보이는 전문가를 섭외해 타사와 경쟁했다”며 “후보자 자질이나 전문성, 정당의 정책 등을 다루기보다는 정당 간의 순위경쟁만 부각하는 언론사가 판을 쳤다”고 지적했다. 한 일간지 기자도 “언론은 여론조사를 적절히 활용하되, 유권자들에게 그 문제점을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여론조사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자를 검증,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