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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는 제보전화에서 시작됐다

<제보에 울고 웃는 기자들>
제보로 단독·특종도 하지만
개인고충이나 이해관계 많아
"왜 취재 않느냐" 때론 위협
그래도 제보에 귀 기울일 것

강아영 기자  2016.03.29 21: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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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과자가 경로당 회장이 됐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범죄자가 경로당 회장이 돼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 제보전화에 A기자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특종이라는 말 뒤에 따라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A기자는 “법적으로 기준이 없는 것 같다. 원만하게 해결하시라”고 권유해 봤지만 제보자는 연신 “기자면 이런 거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끈질기게 따질 뿐이었다. A기자는 “이런 분들은 한 번 전화하면 20~30분을 자기 할 말만 한다”며 “기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예의바르게 전화를 받고 끊을 수밖에 없어 지치고 피곤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B기자도 사회부로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돼 걸려온 전화 한 통을 잊지 못한다. 전화는 “사기를 당해 자신의 삶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는 내용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보자를 만났지만 그가 당한 일들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B기자는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하라며 다독였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는 제보자를 위해 연락처를 알아봐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부터 제보자는 술만 마시면 B기자에게 전화해 “감사하다”는 말부터 “자살한다”는 협박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B기자는 “그렇게 두 달간 제보자에게 밤낮으로 시달려야 했다”며 “기자를 민원 창구로 아는 제보자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제보에 얽힌 사연은 많고 다양하다. 그만큼 제보자는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어 기사를 제보하는 사람, 연락 없이 불쑥 사무실이나 기자실에 찾아와 기자를 찾는 사람, 원래 알고 있던 친구나 지인까지 제보자는 언제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제보자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상당수 제보 내용이 제보자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얘기를 들은 기자가 그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으면 제보자는 “왜 취재를 하지 않느냐”며 서운해 하거나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종합일간지 5년차 한 기자는 “얘기를 잘 들어주면 제보자들은 대개 자기가 얘기한 것이 그대로 보도되는 줄 알고 큰 기대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개인적인 고충거리를 무턱대고 제보해 기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면 제보자들은 협박을 하거나 전화로 계속 괴롭힌다. 회사 공용 제보메일에 기자 이름을 대고 욕하거나 기사 하단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방송사 한 기자도 “제보전화에 많이 시달린다”며 “흥신소처럼 해결해 달라는 경우가 많다. 업무 중에도 불쑥불쑥 전화가 걸려오는데 진짜 제보는 10통 중에 1~2통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을 뒤흔든 많은 뉴스들 또한 제보자에게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영화 ‘제보자’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까지 가지 않더라도 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 수상 후기를 보면 많은 기자들이 제보전화 한 통으로 온 국민이 몰랐던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서해대학교 이사장 146억원 횡령 비리’로 지난해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김진방 연합뉴스전북 기자는 “사실 이런 제보는 1000번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제보”라면서도 “요즘에는 예전 같지 않게 제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전했다.


‘조달청 관급자재 가격조작’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이세영 TBC 기자도 “제보자의 의도가 순수하지만은 않아 순도 100%의 ‘팩트’만 취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되도록 한 통의 전화라도 소중히 생각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누군가 어렵게 걸었던 전화 한 통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매번 제보자와 사실관계를 놓고 씨름하는 기자들이지만 상당수 언론 보도는 개개인의 시민의식, 정의감에 기대 이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간지 3년차 한 기자는 “제보자들은 조금이라도 세상을 개선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월급의 30%는 이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데 쓰인다고 생각한다. 일에 쫓기더라도 차가운 논리로만 응대하지 말고 그들의 억울함을 경청해주는 것 또한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