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국회연설을 3만~4만명의 사람들이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본다. 채팅창, SNS를 통해 전달된 시민들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낯선 풍경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달 23일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시작한 필리버스터. 이 생경한 일이 종료된 지난 2일까지의 192시간은 과연 우리 언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마국텔 현상(MBC ‘마이리틀텔레비전’의 패러디, ‘마이국회텔레비전’의 준말)’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층이 정치문제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하며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필리버스터 기간 내내 이를 생중계해 화제를 모은 고제규 시사인 기자는 “디지털엔 민감하고 정치엔 무관심했던 젊은 계층이 정치 콘텐츠를 흡수,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언론보도와 기관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한 ‘팩트TV’의 누적 방문객 수(지난달 23~25일)는 180만명에 달했다. 국회 인터넷 의사중계 시스템 이용자는 필리버스터 전 하루 6000여건에서 지난달 24일 13만5159건까지 뛰었다.
그는 “‘내 이메일이 털릴 수도 있다’는 우려 등은 내 삶과 정치가 무관치 않다는 걸 연결 짓는 고리가 될 수 있다”면서 “이 기간 사이트 방문자와 페이스북 공유반응을 체크해 보니 10~20대 후반 계층이 급격히 늘어났고, 정치기사를 읽지 않던 이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서의 20대 투표율 등을 지켜봐야한다. 온라인 팬덤에 따른 착시현상을 고려하면 과대평가는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언론에 대해 비판하면서 ‘정치’가 ‘놀이’로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간 점에 주목했다. 최 교수는 “정치혐오는 무관심으로 이어져 결국 권력을 잡은 집단의 의도대로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언론 외적으로 해소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의원들의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이 전달돼 공감을 일으키고, 놀이의 형태로 (향유되면서) 정치혐오를 바꾸는 단초가 됐다”고 평가했다. 냉소·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온 정치에서 찾은 ‘재미’는 이후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로 이어지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청년층은 이 기간 국회의원의 캐릭터를 만들어주거나, 별풍선을 쏘듯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보내며, ‘정치’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도 이번 현상이 ‘제 역할을 못하는 기성 언론들의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데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특히 ‘큰 입’을 가진 전통매체들이 선정적 보도, 맥락을 포기한 현상 위주의 보도를 지양하고 자기성찰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필리버스터가 기성매체에 의해 희화화, 왜소화, 정쟁화됐다’며 업계에서 부르짖는 혁신의 허울을 비판했다. 그는 “21세기 보도비평은 미디어수용자의 인식과 뉴스 소비행태가 출발지점”이라며 “알맹이 없고, 구체적 책임은 피하는 함량미달의 보도가 쏟아졌다. 수용자를 살피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또 한 번의 신뢰회복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주요 외신의 한 기자는 “필리버스터에서 보도가 돼야 하는 건 누가 몇 시간을 했느냐, 기저귀를 찾느냐가 아니라 법안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라며 국내 언론들이 보수정부에서의 우경화 경향,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등의 큰 맥락에서 이 사안을 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생중계된 방식에 대한 호응은) 시민들이 기존 언론에서 필리버스터를 다루는 방식, 편집을 통해 보여주는 걸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시민들의 국회 참관 등을 보면) 언론이 잘 보도만 해도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게 확인된 점은 다행”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