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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에 징검다리를 놓다

한겨레21, 2년여 걸쳐 집중보도
제작비 마련 온라인 펀딩 이끌어
송호진 기자 "수많은 기자의 땀"
조정래 감독 "언론 도움에 감사"

최승영 기자  2016.03.09 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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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나비가 이역만리 바다와 육지를 건넌다. 수십 만 혼(鬼)이 이제야 고향(鄕)으로 돌아온다.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숨지고 버려진, 억울한 10대 소녀들의 넋이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 이야기를 영화 ‘귀향’은 2016년 대한민국에 다시 불러왔다. 30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이 초혼제에 동참했다. 영화 ‘귀향’이 세상으로 나온 데는 14년간 수고한 제작진, 제작비를 후원한 7만여명의 시민, 그리고 ‘한겨레21’ 등 언론이 있었다.


송호진 한겨레21기자는 지난 2014년 봄, ‘귀향’이 투자자를 찾아 못해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정치담당 기자였던 그는 후배에게 이 같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인연은 이어졌다. 그해 7월부터 20여 개월간 송 기자는 총 31건의 기사를 통해 ‘귀향’을 끈질기게 조명했다.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이 영화가 위안부 소재의 ‘대표’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 적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영화가 언제든 엎어져 열정과 노력이 아무 평가를 받지 못할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었는데도 열과 성을 다 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제가 이 영화와 끝까지 함께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14년. 조정래 감독이 ‘귀향’을 구상해 개봉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2002년 판소리 창작모임 ‘바닥소리’의 고수로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과 맞닥뜨린 게 고행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큰 골격을 잡고 투자자를 물색했지만 모두가 만류하고 나섰다. 수차례 좌초 위기를 겪던 중 2013년 중국 쪽의 투자가 물 건너가면서 제작진은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송 기자는 지난 2월 보도에서 한 관계자의 입을 빌어 당시 “감독의 눈빛이 꺼져있을 만큼 의욕이 없었다”고 전했다.


‘귀향’의 제작은 ‘한겨레21’의 ‘뉴스펀딩(현 스토리펀딩)’으로 전기를 맞게 됐다. 대략적 줄거리와 영화 관련 영상이 웹에 오르고, 이를 본 시민들의 후원이 알음알음 이어지던 가운데 ‘한겨레21’은 시민들의 이목을 ‘귀향’으로 집중시켰다. 1차 뉴스펀딩을 통해 총 2억5098만원이 모였고, 2차 펀딩에서는 3억4428만원이 후원됐다. 조 감독은 이 후원금으로 촬영과 후반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배관공, 카센터 사장, 헬스 트레이너 등 평범한 시민들이 투자에 나서고, 유치원생 아이가 저금통을 깨 후원을 했다. 순 제작비 25억원 중 시민 후원금·투자금은 22억원. 이들의 이름은 영화에 온전히 담겼다. ‘귀향’은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긴 엔딩 크레딧, 최대규모의 시민후원(7만5270명)이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송 기자는 “고통 속에서 이 문제를 풀려고 한 할머니들이 계셨고, 청춘의 한 자락을 온통 쏟아부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감독·배우·스태프들이 있었다. 저는 2014년부터 (보도를 통해) 합류해 2년 밖에 안됐다”며 “이들의 열망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다. 그저 시민들과 만나는 작은 징검다리를 놓은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귀향을 소개하고 알린 타 매체를 일일이 거론하며, ‘한겨레21’이 지속적으로 보도한 것은 맞지만 함께한 수많은 기자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자 출신 대기업 홍보팀 직원의 노력, 포털 카카오의 무료광고 등을 언급하며 ‘귀향의 기적’ 뒤에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독자들과 만나려고 하는 간절함이 내부에 있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오랜 기간 보도할 수 있었고,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정래 감독을 만나 시나리오를 받았고 그걸 읽었다면, 제 경험으론 어떤 기자들도 함께 했을 거 같다. 다만 제가 조금 일찍 인연이 돼 만났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정래 감독은 지난 5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언론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여러 기자분들이 ‘이 프로젝트만큼은 돕겠다’는 마음으로 동참해줬다”며 “돈이 될 때마다 무작정 촬영에 들어갔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큰 도움을 받았다. 특히 송호진 기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이옥선(90) 할머니는 ‘귀향’의 선전에 매우 기뻐했다. 할머니는 지난 5일 ‘귀향’ 상영에 대한 소감을 묻자 “춤을 췄어요, 너무 좋아서”라며 웃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당신들 문제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고 눈물이 난다’며 시사회 자리에서 할머니들이 많이 우셨다”고 전했다.


송 기자는 ‘귀향’을 위로와 치유의 영화로 평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겪었지만 후손들이 이 일을 겪지 않게 하려면 고통스러워도 내가 계속 얘기해야 한다’는 강일출 할머니의 말을 전하며, “이 영화가 위안부 문제는 물론 아픈 역사를 다각도로 보는 물꼬를 열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기적이 일어났고,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이를 만들었다. 여기엔 언론의 자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