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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내부 비판 무력화 드라이브

KBS, '부당징계' 비판성명 삭제
MBC, 공정방송 조항 변경 추진
감시활동 보완 움직임 SBS 눈길

이진우·최승영 기자  2016.03.01 20: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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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사 KBS와 MBC에서 자사 보도에 대한 공정방송 감시 활동을 무력화하고 사내 언로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KBS는 노사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을 근거로 공정방송 감시활동을 한 기자들을 징계하고, 이에 반발하는 구성원들의 성명을 사내게시판에서 삭제했다. MBC는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간사에 대한 취재 불응지시 등에 이어 단체협약 중 공정방송 실현의 주체에서 ‘조합’을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추진 중이다. 반면 SBS는 공정방송 감시활동을 보강하기 위해 노사 간 협의체를 구성, 제도 보완을 추진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KBS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밤 9시43분 보도본부 39기 28명의 기자들이 올린 기수 성명이 26일 오전 돌연 사내게시판에서 종적을 감췄다. 해당 성명은 최근 인사위원회에 회부돼 각각 감봉 6개월과 견책을 받은 정홍규·김준범 기자에 대한 징계를 두고 해당 기수의 입장을 밝힌 것이었는데, 사측이 ‘전자게시 관리지침’을 근거로 성명을 삭제해 버린 것이었다.


삭제된 성명은 “믿을 수 없습니다, 선배 기자의 전화 한 통이 징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부끄럽습니다, 부당한 징계 앞에 무기력한 우리가. 절망합니다, 앞으로 논쟁이 사라질 회사의 미래에. 분노합니다,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며 입을 막으려는 치졸함에(이상 전문)”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측은 “성명서의 일부 내용이 해당 근거의 ‘게시금지 사항’에 해당돼 삭제 조치를 했고, 건전한 비판을 넘어 비방 수준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든 근거는 전자게시 관리지침 제3조 제3항 제5호 및 제4조 제2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해당 게시물은 ‘특정인 또는 단체를 비방, 중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삭제된 것이다. KBS 한 기자는 “2001년에 입사했지만 (사내 게시판에서) 기수 성명이 삭제된 경우는 처음 겪었다”며 “황당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앞서 정홍규·김준범 기자는 각각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으로 활동하다가 석연치 않은 리포트에 대해 해당 기자 등에게 보도경위를 물은 것 등이 ‘성실 및 품위유지’ 위반이라며 지난달 24일 징계를 통보 받은 바 있다.


인사위 회부 전후로 KBS내부는 노조·직능단체는 물론 보도본부 10개 이상의 기수가 징계철회 등을 촉구, 성명을 잇따라 게재하면서 사내게시판, 보도정보게시판이 들끓고 있다. 성명이 삭제된 39기 기자들도 지난달 29일 낮 사측의 삭제 조치에 항의의 뜻을 밝히며 백지성명을 재차 게시했다.


KBS 사측은 2월 정례 공방위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노조는 지난달 18일 공문을 보내, 26일 공방위 소집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거부의사를 밝혀 이 또한 무산됐다. 사측은 “안건에 대한 이견 등이 있어 연기하자고 통보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날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KBS노동조합(1노조)은 29일 성명을 통해 “사측의 공방위 거부는 명백히 단협(제24조, 제26조) 위반”이라며 “법적절차를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MBC 사정도 다르지 않다. 사측이 단체협약의 공정방송 조항에서 ‘조합’을 삭제하자고 요구한 것을 두고 내부 반발이 거센 상황. 노조는 “지난해 최기화 보도국장이 민실위 보고서를 훼손하고 간사의 취재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공정방송을 위한 노조의 노력을 묵살하려는 의도가 이번 단협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사측은 지난달 16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으로 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기존 단협 제20조(공정방송의 실현의무)에 명시된 ‘회사와 조합은 국민의 알권리의 충족과 문화수준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공정방송 실현에 최선을 다한다’는 조항에서 ‘조합’을 빼고 ‘회사’만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공영방송은 이미 고등법원에서도 근로자의 중요한 근로조건으로 인정한 부분”이라며 “타매체도 당연히 공정방송 조항에 노사를 함께 명시하고 있다. 사측의 입맛대로 보도하려는 터무니없는 요구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중노위는 수차례 이뤄진 회의에서도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지난달 23일 최종 조정을 중지했다.


반면 SBS는 이들 공영방송사와는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SBS관계자 등에 따르면 SBS는 최근 노사 간 공정성 강화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2일 노사 간 1차 미팅을 예정하고 있다. 기존 공정방송 감시활동과 관련된 사내 제도적 장치를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노사가 함께 협의하는 자리다. SBS기자협회가 중심이 돼, 가이드라인이 아닌 실무적이고 실효적인 대책 마련을 목표로 구체적인 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기자들이 활발히 연구·토론 작업을 진행,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키 위해 고민 중인 상황이다. 협의체가 구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정방송 감시활동'의 제도적 보완에 대해 노사 간 일정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엿보인다.


SBS기자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마련된 안을 (노사 간) 협의를 통해 단협, 취업규칙 등에 반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만 어느 선까지 합의가 이뤄질지 장담은 이르다”면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고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