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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 데이, 안중근 의사 그리고 언론

[컴퓨터를 켜며] 최승영 기자

최승영 기자  2016.02.24 14: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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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밸런타인 데이’를 거치며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재계의 다양한 판촉·할인행사부터 지나친 소비·상업주의로 기우는 데 대한 우려, 국적불명의 왜색 짙은 날을 기념하는 세태 비판까지. 매번 밸런타인 데이가 돌아올 때마다 반복되던 보도들이 또 다시 등장했다.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날(?)을 앞두고 이에 대한 보도가 이뤄지는 것은 뻔하지만 필요할 수 있다. 보도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매해 조금씩 변주돼 나오는 개별 보도들의 지류가 우리 공동체에 이득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올해 밸런타인 데이 관련 보도 중 눈길을 끈 것은 ‘2월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하다’는 정보값을 가진 보도였다. 보도 논지를 통약하면 이렇다. ‘젊은 층에서 초콜릿을 주고받는, 왜색 짙은 밸런타인 데이 탓에 2월14일이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묻혔다’는 것. 보도건수도 상당했다. 포털 네이버에서 ‘밸런타인 데이’와 ‘안중근’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언론사들은 2016년 들어 현재(2월22일)까지 총 70건의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들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팩트가 2월14일이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는 점이다. 침략국 일본에 의해 사형당한 고인의 넋을 기리고자 한다면 우리가 애도해야 할 날은 ‘사형집행일’이 되는 게 맞지 않나. 일본 재판부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법권의 상실에 대한 애도의 취지에서 해당 기사들이 작성된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언론들이 보도의 정합성을 충족시키려는 필연적인 사유에서 이날 안 의사를 소환한 것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 달리 말하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를 지적한 언론들은 정작 역사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다양한 ‘데이’ 중 이날 쓸 재료 하나가 필요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보도가 만들어 낸 맥락을 통해서도 이는 드러난다. 이들 보도는 ‘안중근이라는 개인의 전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과 ‘밸런타인 데이라는 상술을 향유하는 우리’를 충돌시키며 독자의 자성과 반성을 의도한다. 하지만 실상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모르거나 관심이 부족한 이유는 모르거나 관심이 부족해서이지 밸런타인 데이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언론사들이 ‘밸런타인 데이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데 방해요소가 된다’는 서사를 위해 이를 뜬금없이 등장시켰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돌고 돌아 묻고 싶다. 포털만 찾아봐도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보도가 올해도 등장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희생과 비극을 숭고함으로 승화시켜 전체가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남긴 것 말곤 없다. 이미 ‘화이트데이(3.14)는 알아도, 삼일절은 모른다’, ‘블랙데이(4.14)는 알아도 임시정부 수립일(4.13)은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담은 보도들이 널려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데이’의 상술을 비판하는 언론보도들이 넘쳐나지만 실상 이때 최대 대목을 맞는 것은 언론사와 기자들이다. 손쉽게, 많은 클릭이 보장된 기사거리를 큰 고민없이 ‘생산’할 수 있는 시기여서다. 항일 독립운동가가 어떤 이유에서건 한 번이라도 더 조명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일 순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식의 보도를 두고 지하에서 기뻐할 것 같진 않다. 기억은 대상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