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강아영 기자 2015.12.09 13:32:56
최근 언론사들이 정부에 돈을 받고 정책홍보성 기사를 써주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이뤄진 수십억원의 예산이 언론사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에 돈을 받고 협찬 기사를 써서 비판받아온 언론사들이 이제는 정부 부처까지 손을 뻗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엔 각 부처별로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협찬 기사를 끌어오는 등 관계가 복잡·전문화되고 있다. 정부 견제와 비판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9일 기자협회보는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실이 16개 정부부처(미제출 고용노동부 제외)와 16개 산하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정부부처 언론홍보 예산집행 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최근 논란이 일었던 국방부뿐만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 병무청, 방위사업청, 농촌진흥청 5곳이 언론기관에 광고 외 협찬기사를 의뢰했고, 언론사가 이를 받아들여 정기적으로 기사를 내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1건당 적게는 백만원대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의 예산이 지급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매일경제, 아시아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헤럴드경제 등에 총 34건의 기사를 의뢰해 약 6억원을 지급했다. 이 기간 동안 조선일보의 ‘밭직불금, 서류 한 장만 내면 바로 탄다’, 중앙일보의 ‘50대 “새마을운동” 30대 “친환경 농산물” 10대 “비닐하우스”’, 헤럴드경제의 ‘저비용 고효율 한국형 스마트팜 첨단 농업 부활의 찬가 이끈다’ 등 농림부와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졌다.

협찬 기사는 대부분 대행사에서 사진과 취재자료를 모두 준비해 사업국이나 데스크를 통해 의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협찬 기사를 쓴 한 기자는 “대부분 (협찬 기사인지) 알고 쓴다”며 “기획팀 같은 정체불명의 바이라인을 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력 매체의 경우 별도의 전담팀까지 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부부처 산하기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서울신문과 YTN, 채널A 등에 66건의 기사를 의뢰하는 데 약 4억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5월과 8월 ‘농민 품삯 고민 줄여준 농기계 에디슨’ ‘새우맛, 옥수수맛 나는 곤충이 있다고?’ 등 5건의 기사를 연달아 내보내며 총 3960만원을 받았고, 채널A도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버려지는 쌀겨, 알고 보니 다이어트에 효자’ ‘스마트팜…토마토로 연매출 5억원 버는 비법은?’ 등의 기사를 연이어 보도하며 총 3000만원의 협찬비를 받았다. 보도된 리포트에는 시청자들이 홍보기사라고 인식하지 못할 만한 제목이 달렸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산하기관은 총 예산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홍보비를 남발하고 있다”며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존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부처 관계자도 “산하기관은 낙하산 기관장이 있기 때문에 협찬기사를 통해 빨리 실적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최근 정부 부처들은 전문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언론 홍보를 진행하는 ‘턴키 홍보’를 확대하고 있다. 턴키는 행사와 광고, 협찬 등 홍보 업무를 통째로 맡긴다는 의미다. 이 중에는 언론사 협찬 기사도 포함된다.
실제로 본지가 입수한 ‘2015년 정부부처 홍보대행사 계약 현황’ 자료를 보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외교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 통계청 등 12곳은 올해 홍보대행사와 300억원대의 신규 계약을 맺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월 4억7500만원에, 방위사업청은 5억원에 홍보대행사 인포마스터와 계약을 맺었다. 올해 예산이 2001억원인 병무청은 4억6200만원을 홍보대행사 계약금으로 지출했다. 병무청의 계약 이후 SBS와 동아일보, 서울경제 등 언론사들은 ‘특공병, MC승무헌병 체력검정 조명’, ‘병역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병역 복무기간 희생 인정해야’ 등 군과 관련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대행사가 발빠르게 언론사에 접촉해 협찬기사를 따낸 것.
지역신문 소속의 한 기자는 “비판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데스크가 광고기사를 지시해 황당했다”며 “재정난을 광고로 때우려는 경영자들의 마인드 때문에 기자들이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업계에서는 정부부처가 선호하는 대표적인 언론 홍보대행사로 ‘인포마스터’를 꼽는다. 인포마스터는 정부부처만을 고객사로 둔 정책홍보 대행사이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내부 직원 중 기자나 정부기관 출신이 많다”며 “협찬기사뿐만 아니라 민감한 이슈가 있을 때 정부에 언론대응과 관련한 자문을 해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직원 150여명 중 60여명을 언론홍보 인력으로 둔 인포마스터는 서울뿐만 아니라 기관이 몰려있는 세종시에도 지사를 두고 있다.
인포마스터 전 직원인 A씨는 “(정부와) 연 단위로 평균 2억~3억원씩 계약을 한다”며 “기사 1건당 나가는 돈을 포함해 언론홍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계약금 내에서 지출되고 나머지를 챙기는 방식이다. 기사 실적이 좋으면 총 이윤에서 5% 정도를 추가로 가져가기도 한다”고 했다.
인포마스터를 비롯한 홍보대행사들은 경쟁입찰을 통해 공개적으로 선정된다. 먼저 각 부처가 ‘나라장터’ 사이트에 용역 공고문을 올리면 대행사는 제안서 제출-경쟁PT-심사 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홍보사가 선정되면 캠페인이나 광고PPL 등 각각의 부문에서 들어가는 예산을 부처와 협의해 미리 계약금을 받고 홍보를 진행한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가끔 신념이 투철한 기자를 상대로 기사 의뢰를 하게 되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이 풍부한 홍보사는 출입처 행사 안에 슬쩍 끼워 넣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유도를 한다”고 했다. 그는 “홍보대행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직원은 정부부처의 외부전문가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언론사들과 정부의 관계는 부처의 실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 특히 연말에는 내년도 예산 책정을 앞둔 부처들이 실적 다툼에 내몰리며 언론 홍보성 기사를 쏟아내기 일쑤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해 연말에 각 부처들의 홍보평가를 실시한다. 언론광고홍보 학자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는 기사 노출빈도, SNS 대응 현황 등을 분석해 각 부처들이 얼마나 국민들과 소통을 잘 했는지 판단한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기획기사와 기고 건수를 토대로 점수와 등급이 매겨지기 때문에 부처들끼리 민감한 게 사실”이라며 “최근 모 경제지가 3페이지에 달하는 홍보성 기사를 쓴 것도 평가시기에 맞춰 내보낸 것”이라고 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대행사를 통하면 노골적으로 기사를 청탁해야 하는 부담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변인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액의 예산을 감수하고서라도 대행사와 계약을 맺는 이유다.
난무하는 정책홍보 기사는 언론사의 경영난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언론사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내놓은 홍보기사뿐만 아니라 정부 협찬에도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한 일간지의 기자는 “‘내년엔 어느 언론사와 협찬 기사를 진행할 건지 출입처 가서 알아오라’는 간부도 있고, ‘선수들끼리만 알지, 일반인들이 협찬기사인지 어떻게 구분하겠느냐’며 부추기는 선배도 있다”고 했다.
언론사들은 캠페인과 행사, 협찬 기사 유치를 놓고 경쟁을 서슴지 않는다. 한 홍보대행사의 직원은 “기사 1건당 단가가 해마다 비싸지고 있다”며 “언론사들의 사정이 어렵다보니 기사 한 건당 가격을 올려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일각에서는 협찬기사가 언론 본연의 역할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정부 등 권력기관에 대해 감시와 비판을 해야 하는 언론사가 부처의 광고 고객이 되면 그만큼 기사를 쓰는 데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분야 홍보전문가인 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는 “금전적인 이유로 국민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수익과 경영에 보탬이 될 진 모르겠으나 긴 안목에서 언론의 기본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협찬 여부를 명시하지 않고 취재기사처럼 보도되는 경우는 더 큰 문제로 지목됐다. 유 교수는 “근본적으로 홍보기사가 늘어나는 건 바람직하진 않지만 후원 여부를 정확히 기재할 경우 독자들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있다”며 “기자 개인의 각성과 함께 언론사나 협회 차원의 논의를 통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강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도 “현재 방송, 신문은 무분별한 협찬기사와 관련해 법적인 제재가 없거나 불명확한 게 현실이다.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