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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사람들, '조연' 아닌 '주연'으로 지낸 일주일"

[기협 대표단 베트남 방문기] 최석환 머니투데이 지회장

최석환 머니투데이 지회장  2015.11.18 13: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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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면 우선 나는 달라진다. 낯선 내가 된다. 낯설지만 나를 되찾은 것 같아진다. 내가 달라진다는 게 좋다. 달라질 수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좋다.” -김소연 ‘어떤 날’


꼭 5년 만이다. 베트남을 다시 찾은 건. 그래서였을까. 비행기에서 내려 땅에 내딛은 첫걸음부터 공항문을 나서며 들이마신 공기의 질감까지도 모든 게 낯설었다. “오랜만이구나.” 저절로 내뱉은 말이 무색할 만큼 일상과 다른 먼 공간에 와있다는 게 실감났다.


그나마 닫혀 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어준 건 한국기자협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초청해준 베트남 기자협회 실무진들의 따뜻한 환대였다. 양국 협회는 1992년 한-베트남 수교 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민간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방문엔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을 포함해 10명의 대표단이 동행했다.


◇하노이로 가는 길
‘노이바이(Noi Bai) 국제공항’에서 30분간 차를 타고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시내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차로에 빡빡하게 늘어선 오토바이의 행렬과 곳곳에서 마주치는 한국 기업들의 간판,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거리와 길가에서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잠시 머릿속 어딘가에 묻어뒀던 베트남에 대한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다. “참, 베트남은 이런 곳이었지.”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곧바로 이어진 응웬 휴우 투언 회장을 비롯한 베트남 기자협회 직원들과의 ‘첫’ 만남도 그랬다. 인사와 악수, 대화로 어색함이 사그라들면서 한참을 잊고 지낸 베트남 사람들의 정(情)이 느껴졌다. 그 순간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한 여행기에 써놓은 문장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단단히 무장한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 삭막한 도시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엽서 속의 함초롬한 풍경으로 거듭날 것이다.”


◇마법에 걸린 일주일
“축 쑥 퀘에(Chuc suc khoe).” ‘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의 베트남 말이다. 지역에 상관없이 건배사로 쓰인다. 실제로 하노이와 라오까이, 사파에서 다낭으로 이어진 일주일간의 출장길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축 쑥 퀘에’의 마력은 실로 대단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짐을 싸야 하는 대표단의 고된 일정 속에서도 매번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열정을 선물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수민족의 거주지 ‘라오까이’는 물론 남미 페루가 연상되는 안개와 구름의 나라 ‘사파’, 해변의 낭만과 고대도시의 신비를 간직한 ‘다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노이에서 4~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로 1시간 날아가야 하는 먼 곳이었지만 ‘축 쑥 퀘에’ 한마디에 포옹을 나누고 진심을 확인했다.


게다가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기자들이 아니었던가. 동병상련. “매일 오후 3~5시 사이에 기사를 보내고 밤 10시까지 다음날 발행할 신문을 마감한다”던 그들의 일상과 “신문부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어떤 대책이 있나요”라는 그들의 고민은 온전히 우리의 것과 닮아 있었다. 늘 누군가의 삶을 담아내는, 주연보단 조연으로 만족하는 직업에 대한 공감 같은 게 더해지며 오늘만큼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즐거워했던 시간이었다.


◇에필로그-그 사람들
일주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칠 것 같지 않게 내리던 비도 뜨거운 햇살로 바뀌어 가는 발길을 잡는 듯 했다. 무엇보다 출국하기 직전까지 음식을 덜어주고, 건배를 권하며, 사진을 찍고, 이별을 아쉬워했던 베트남 기자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움직이는 비행기 차창으로 스쳐가는 그들의 어려운 베트남 이름을 한명씩 불러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곧 또 봅시다.”

※추신(P.S.)=“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오는 일에서 나는 탄성(彈性)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날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함부로 혹은 지속적으로 잡아당겨지더라도 조금쯤은 다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은희경 ‘안녕 다정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