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기자 2015.11.04 13:18:27
지난 2012년부터 촉발된 MBC 노사 간의 법적 공방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해고·징계와 관련해 노조가 승소를 이어간 데 대해 사측이 항소를 거듭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법조계는 ‘한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소송이 일어나기는 정말 보기 드문 일’이라며 우려했다. 기자협회보는 갈등이 시작된 170일간의 파업부터 법적 공방 과정, 향후 불씨가 남은 소송 등을 짚어봤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꼭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겁니다”. 지난달 15일 대법원 앞. MBC 이상호 기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 기자는 이날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 당시 MBC 보도를 ‘흉기’로 표현하며 비판했다. 사측은 그를 즉각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모욕죄만 받아들여 그를 법정에 세웠다. 그는 “회사가 패소를 불복하고 항소해 결국 대법원까지 오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됐다”며 “자기 식구에게 칼을 들이댄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와 회사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엔 전격 해고되기도 했다. 사규의 명예훼손과 품위유지를 위반했단 이유에서다. 이 기자는 당시 MBC 직원 신분으로 개인 팟캐스트를 운영했는데 이게 갈등의 불씨가 됐다. MBC가 대선 직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과의 인터뷰를 추진했다는 사실을 그가 폭로한 것. 결국 사측은 해고를 통보했다. 법원은 이들의 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이 기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회사에 복직됐지만 회사는 그에게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징계의 칼날은 입사 3년차 어린 PD도 피할 수 없었다. 제작국 막내인 권성민 PD는 지난 1월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반복적인 해사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해 5월 개인블로그에 MBC의 세월호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정직 6개월을 받았다. 이후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로 발령받은 권 PD는 자신의 처지를 ‘유배’에 비유하는 웹툰을 SNS에 올렸고 결국 사측은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법원은 1심에서 ‘MBC의 정직, 전보, 해고 결정은 모두 무효’라며 권 PD의 손을 들어줬다. 권 PD는 “앞서 선배들 사례만 봐도 (사측이) 대법원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항소를 할 것”이라며 “예능국이 그립지만 1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권 PD의 예상대로 MBC는 판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와 동료를 조롱하고 비웃은 권성민에 대해 문화방송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처는 해고”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지난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이후 불거진 MBC 노사 간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고와 징계를 둘러싼 감정 대립에 3년 넘게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기자들이 승소를 이어가도 사측이 패소를 인정하지 않고 항소를 거듭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노사가 공방을 벌이고 있는 소송은 해고무효소송과 업무방해 형사소송, 손해배상소송이 대표적이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진행된 소송은 총 30여건. 이 가운데 해고·징계와 관련한 소송은 18건으로, 정직처분무효확인과 전보발령효력정지가처분 건을 포함한 3건 외 모두 사측이 패소했다.
특히 노조는 지난 2012년 파업과 관련한 소송 4건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서울고법은 지난 4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정영하 등 노조원 6명의 손을 들어줬다. 정직 처분이 내려진 38명의 직원들도 풀려났다. 한 달 후엔 업무방해로 기소된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해 재물손괴 행위 등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형을 내렸고, 업무방해에 관해선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또 지난 6월 사측이 제기한 195억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원심에 이어 기각되는 등 연일 노조의 승소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법원은 노조의 공정방송협의회 개최 요구를 사측이 정당한 이유 없이 수차례 거부한 점, ‘PD수첩’ 제작진을 대거 업무 관련성이 적은 부서로 발령 내는 등 인사권을 남용한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측은 방송법 등 관계법령 및 단체협약에 의해 인정된 공정방송 의무를 위반했을 뿐 아니라 그 구성원인 다수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근로환경을 악화시켰다 할 수 있다”며 “근로자들은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고 판시했다. 노조는 “1심 재판부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하나같이 공정방송에 대한 요구가 MBC 노조의 파업의 이유로 정당하다고 판결했다”며 “사측이 내부 구성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고, 앞으로도 해고·징계를 맘대로 일삼고자 소송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가 소송남발로 수십억 원의 손실을 봤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월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MBC는 태평양, 광장, 세종, 화우 등 대형로펌 7곳에서 46명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송호창 의원은 “수임료와 인지대를 종합해보면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심과 2심에서 계속 패소하면서 부당해고자들에게 줘야 하는 밀린 임금 등을 고려하면 금액이 더 불어난다. 송 의원은 해고자와 정직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만 약 2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노조 측의 신인수 변호사는 “한 회사에서 소송이 이렇게 많은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법원이 여러 번 ‘인사권 남용’을 지적했는데도 항소를 계속 하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MBC는 소송비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송호창 의원이 관리·감독권한이 있는 방문진을 통해 국정감사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회사 안팎에선 지난해 270억원 적자를 기록한 만큼 최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소송비는 중요한 경영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MBC의 한 기자는 “경영진의 배임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노사는 최근 불거진 ‘직종폐지’ 논란 등으로 해고·징계에 이어 2라운드 소송에 접어든 상태다. 노조는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은 불법 행위”라며 지난달 27일 법원에 직종폐지 무효 및 손해배상 청구 관련 소장을 접수했다. 또 사측이 전보발령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사회의결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동시에 접수했다. 최근 전보발령효력정지가처분 소송에서 사측이 승소한 만큼 직종폐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사측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직종 개념을 사규 개정을 통해 바로잡기로 한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고 하자, 노조는 “부당 전보를 합법적인 것으로 둔갑하려는 의도”라고 맞섰다.
MBC는 정기 인사를 통해 인력 충원을 하는 등 향후 소송 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초 노무팀은 노무부로 전격 승격됐다. 총무부에 소속돼 있던 노무팀이 독립해 독자적인 부서를 꾸린 것이다. 내부에선 ‘자꾸 소송에서 지니까 인원보강해서 심기일전하겠다는 것 아니겠나’라는 얘기가 나돈다. 실제로 MBC는 올 초 노무사 1명을 신규 채용한 데 이어 최근엔 4명의 노무 인력을 새로 뽑았다. 사측은 “노조에서 먼저 건 소송인데 계속 지고만 있을 순 없지 않느냐”며 “인력 이동을 통해 소송에 대비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노조는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기자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사측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며 “사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훼손해 MBC의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