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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시라"는 작별인사는 잔인했다

[기고] 중앙일보 전수진 기자(통일부 출입)

중앙일보 전수진 기자  2015.10.28 13: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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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애달픈 사연에 메모하고 카메라 셔터 눌러
상봉장은 분단비극 현장...남북 당국이 눈물 닦아줘야


‘감시 눈초리에 혈육의 정도 주춤.’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열린 1985년 9월 평양을 다녀온 한 일간지 기자가 쓴 취재기엔 이런 제목이 달렸다. 약 30년 후인 지난 10월의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슬픈 변화가 있다면 85년에 비해 상봉 대상자들의 얼굴에 팬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는 것 뿐.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취재한 통일부 공동취재단은 외금강호텔 등 현장 안팎에서 ‘보장성원(지원요원)’ 명찰을 단 북측 관계자들을 항상 마주쳤다. 푸른색 ‘보도’ 완장을 단 남측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가족들 주변엔 이들이 집중 배치됐다. 일부 남측 가족들은 “(감시 때문에 북측 가족들이) 너무 뻣뻣하다”며 아쉬워했다.


기자들에 대한 압박은 방북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번 상봉에선 그 압박의 정도가 예전보다 높았다는 게 중론이다. 20~22일 진행된 1차 상봉 공동취재단을 상대로 북한은 전례가 없는 노트북 전수조사까지 벌였으며, 일부 노트북은 압수까지 하는 행태를 보였다. 24~26일 진행된 2차 상봉 취재 과정에선 북측이 일부 취재단의 USB를 압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통일부 기자단이 이산가족 행사 종료 후 “언론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 시도”라며 항의 성명을 낸 배경이다. 성명은 북측의 이런 압박 행태가 “통일부 기자단의 활동에 압박을 가해 방북 취재를 병행해야 하는 기자들이 북한 비판 기사를 쓰는 것을 꺼리도록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산가족 취재의 씁쓸한 이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북측의 이런 압박도 이산가족 상봉의 뜨거운 감동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했다. 신혼 때 헤어져 65년만에 얼굴을 마주한 부부, 애타게 그리워했던 북녘 맏아들을 정작 알아보지 못한 치매 노모 등 이산가족 상봉장은 분단의 비극이 과거 아닌 현재로서 살아 숨쉬는 현장이었다. 쏟아지는 사연 앞에서 공동취재단은 쉼없이 메모를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상봉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헤어지는 장면에선 북측 보장성원들의 눈가도 촉촉히 젖어들었다. 외금강호텔에서 일하는 북측 접대원(직원)은 공동취재단에게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여러 번 치렀는데, 점점 연세가 많아지시는 것이 느껴진다”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남측의 한 자원봉사자는 결혼식을 2주 앞둔 바쁜 시점에서도 상봉장을 찾아 고령의 이산가족을 위해 봉사를 했다. 분단의 아픔엔 남북이 따로 없으며,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적 이슈가 아닌 인도주의적 문제라는 점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공동취재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장면은 수도 없이 많지만, 치매에 걸린 남녘 노모 김월순(93) 할머니의 말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치게 했다. 작별상봉 때서야 북녘의 맏아들을 겨우 알아본 노모는 남측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며 아들에게 천진하게 “같이 안 가?”라고 물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쯤에서야 할머니는 아들이 북녘에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 듯 했다. 버스에서 창 밖 아들을 보며 오열하기 시작하는 노모에게 “(다시 만날 수 있게) 오래 사시라”는 인사는 잔인하고 무의미하게 들렸다.


김 할머니뿐이랴. 1차 상봉의 96가족과 2차 상봉의 90가족 하나하나가 애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취재 현장은 이들의 슬픔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남북이 함께 닦아주어야 할 눈물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