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15.10.27 22:47:26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중략)…이미 수많은 소셜 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난 2013년 3월4일 취임 일주일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여러 조치가 취해졌고, ‘수많은 소셜 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이라서 그 전체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잇따랐다.
특히 최근 들어 언론 장악 의도가 다분하며 실제 그런 쪽으로 움직이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종의 대기획은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 전체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 이는 유신독재 시절 언론사를 통폐합하거나 언론인을 고문하던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사와 제도, 광고를 통한 교묘한 개입과 관리의 형태에 가깝다. 이를테면 불의 노래가 아닌 얼음의 노래다. 그 선율이 우리에게 겨울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방송평가 규칙 개정으로 방송사 압박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23일 논란이 되던 방송평가규칙 개정을 강행했다. 개정안은 지상파·종편·보도 채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으면 재승인·재허가 때 반영되는 방송평가의 감점을 현행보다 최대 2배 높인다는 것이 골자다.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은 언론자유의 침해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지만 방통위는 강행했다.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방송평가규칙 개정안을 보고안건으로 상정, 행정예고에 들어갔다. 이날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2명(야권 위원)이 개정안 상정에 반대하며 퇴장했지만 남은 위원들이 보고안건 상정을 밀어붙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통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방송심의 결과를 감점에 반영하던 것을 1.5배 높였다. 특히 객관성과 공정성, 재난·선거방송 항목에서 적발될 경우 현행보다 2배 높은 벌점을 받게 된다.
개정안 적용 시 방송사는 3년마다 받는 재승인 심사에서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방송평가는 심사에서 40%라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악의 경우 방송사의 존폐가 정부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방심위가 여야 6대3의 구조로 정치·표적심의 논란을 일으켜 왔고, 최근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심의 범위를 넓히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언론자유 위축에 대한 우려는 괜한 기우가 아니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2012~2014년 방심위의 심의 제재 결과를 토대로 자체 시뮬레이션한 결과 지상파의 방송평가는 최저 1.8점, 최고 7.2점, 종편은 최저 7.7점, 최고 14.3점이 낮아져 방송사 재승인·재허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방송사들 입장에서 방송평가규칙 개정은 분명 현실적인 압박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 9월 사업자 의견수렴 자리에서 대다수 방송사업자가 개정안 반대의견을 낸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조선·동아일보가 이례적으로 방통위의 정책추진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종편이 방심위 ‘단골손님’인 현실과 무관치 않다.
야권 추천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종편의 오보, 막말, 편파방송에 대해 모두가 우려하고, 방송평가 공정성 강화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좋은 약도 때를 못 만나면 독이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론자유 위축 우려가 많은데 평가규칙 개정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더 격렬하게 방송 장악하고 싶다?”
방통위에 대한 이런 오해(?)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물론 다수의 매체를 통해 방통위의 방송평가규칙 개정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합의제’ 원칙과 무관하게 진행됐고,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다. 방통위는 방송평가규칙을 심의하고 제안하는 방송평가위원회 위원 7명 중 5명이 개정안을 반대하는데도 이를 우회해 ‘직권상정’했고, 공정성 평가와 관련해 3000만원을 들여 직접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시점(11월 말) 전에 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방통위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 위해서는 “시일이 촉박하다”고 밝혔다. 이를 총선·대선을 앞둔 정부의 언론통제 기획, 특히 방송에 대한 통제의 일환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이 맥락에서 방송평가규칙 개정은 ‘이미 장악했지만 더 격렬하게 장악하고 싶다’는 정부의 바람에 호응하는 ‘이중 안전장치’ 마련 작업이 된다.

공영방송 KBS와 MBC는 사실상 이사회 접수라는 ‘인사 조치(?)’로 이미 ‘평정됐다’. 올해 임명된 공영방송 KBS이사 11인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9인은 향후 3년(2018년까지)간 공영방송의 최고의결기관으로 활동한다. 특히 이번 이사들은 임기동안 올해와 내후년 각각 KBS와 MBC의 사장선임은 물론 총선(2016년)과 대선(2017년)까지 거친다. 이중 여권 추천 이사들은 KBS와 방문진에 각각 7명, 6명이다. 최근 KBS사장 선임과 관련한 여권 추천 이사들의 밀어붙이기,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절에 대한 평가가 담긴 프로그램 ‘훈장’의 불발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공영방송사의 주요 정책과 방송 프로그램은 이들의 자장 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여권 이사진은 친박·극우 인사들로 채워져 연임·3연임까지 하게 되면서 방송사의 방파제보다는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할 공산이 매우 큰 실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통위의 규칙 개정은 ‘제도’를 통한 방송장악의 후속 보완조치라는 맥락 안에서 성립한다. 이는 방송사 일반, 특히 비판언론에 자기검열의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은 정권연장을 위해 종편이 유지해야할 노선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종편은 막말 방송과 불균형 편성으로 개정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소지가 크다. 이미 조선일보 등에서 ‘정권이 바뀌면 (규칙개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상황이라면 정권연장이 되지 않을 때 종편의 존폐는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는 어느 정도 상수에 가까운 종편들의 친 정부여당 노선을 공고히하는 조치라 볼 수 있다. 이미 ‘국영방송’이란 비아냥을 듣는 공영방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간지·인터넷신문 통제 움직임도
정부여당이 그린 언론통제 기획의 큰 그림에는 인터넷과 신문도 포함된다.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주로 ‘제도’를 통해 이뤄진다면 신문은 ‘광고’를 통해 관리하는 식이다.
우선 인터넷에 대한 장악은 포털, 인터넷신문 등 언론 역할을 하는 매체에 대한 통제와 SNS, 게시글, 댓글 등 여론에 대한 ‘재갈물리기’라는 투트랙으로 이뤄진다.
포털은 최근 정부여당의 포털 때리기로 큰 수난을 겪었다. 지난 9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포털 편향’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여당의 포털압박은 포털규제 법안의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에는 양대 포털의 임원진을 국회 국정감사장에 세우기도 했다. 현재 포털은 정부와 기업에 최상위 댓글 작성 권한을 주는 ‘오피셜 댓글’을 도입했고, 중소 인터넷 언론사의 포털 검색제휴 축소가 예상되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인터넷신문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압박을 받고 있다. 5인 미만 인터넷신문사를 등록취소하는 등 인터넷신문 등록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비판기사의 생산창구를 퇴출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방심위와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중재위)는 인터넷상 여론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는 조치를 내놨다. 방심위는 인터넷상 명예훼손 글에 대해 제3자 신고·직권 심의가 가능해지는 심의규정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 중재위는 온라인 기사는 물론 댓글, SNS 등을 조정신청 대상에 포함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문에 대한 통제는 보다 익숙한 방식이다. 여러 매체와 정치권에서 정부가 광고를 통해 언론을 길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정매체에 광고비를 몰아주거나 빼는 식이다. 국민일보가 박 대통령 비판기사를 쓴 후 지난 6월 정부의 메르스 광고 집행매체에서 제외됐던 사건은 잘 알려진 사례 중 하나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2010~2014년간 정부광고 집행현황을 분석해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정부광고의 절반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고,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보수성향의 인터넷 매체와 TK지역 일간지에 정부 광고비가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학 박사인 심석태 SBS뉴미디어부장은 “방송평가만 하더라도 제도적인 세팅이 안 돼 있는 상태라고 본다. 현 정부는 물론 기존 정부에서도 방송평가는 방송사 길들이기 수단으로만 활용됐지 실제 방송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되진 않았다”며 “이미 규제가 많은데 방통위, 방심위, 중재위까지 나서 더 많은 제도를 도입하고 언론사를 흔드는 데 쓰는 것은 (정부가) 큰 그림을 그려놓고 접근하는 의도로만 보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