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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국, 기자에서 이틀만에 '권력의 입' 변신

청와대 대변인행 비판 목소리

이진우 기자  2015.10.26 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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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없지만 많이 배워서 열심히 하겠다.” 25일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된 정연국 전 MBC 시사제작국장의 소감이다. 대변인 임명 발표 이틀 전까지 MBC에서 일했던 정연국 전 국장은 곧바로 ‘권력의 입’으로 변신했다.


MBC 기자들은 26일 “기자의 소명의식과 책임감, 자존심을 모두 버린 채 정권의 정점을 향해 뛰어들었다”며 “정권의 얼굴을 새 단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배와 후배, 동료 기자들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먹칠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 기자들은 부끄럽습니다>


정연국 시사제작국장이 청와대 신임 대변인에 임명됐다. 정 국장은 보도부문의 현직 보직국장이자 MBC의 대표 토론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의 진행자였으며, 이에 앞서 보도국 사회부장과 MBC 뉴스투데이의 메인 앵커를 맡기도 했다. 이런 보직에 앞서 MBC의 기자인 정연국 국장이 하루아침에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얼굴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명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기자로서 시청자들에게 이런 사명감을 표방하며 기사를 쓰고, 불편부당함을 내세우며 토론을 진행하던 언론인이 소명의식과 책임감, 자존심을 모두 버린 채 핵심 권력자인 대통령의 입노릇을 하기 위해 정권의 정점을 향해 뛰어든 것이다. 이런 정연국 국장에 대해 선배 후배 동료인 MBC 기자들은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정권의 얼굴을 새 단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선배 후배 동료 기자들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먹칠을 한 것이다.


공영방송 MBC의 얼굴도 씻기 어려운 먹물을 뒤집어쓰게 됐다. MBC의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믿고 애청해온 시청자들이 갖게 될 실망과 불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선 현장에서 사명감을 갖고 MBC의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자들은 이제 어떻게 우리 보도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MBC 기자들의 정치권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 야당으로 자리를 옮긴 기자들은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기자들의 정치권 진출은 윤리의 문제이며, 공정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의 명예에 관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공영방송 MBC의 이미지를 팔아 개인의 이익과 출세에 악용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실효성있는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MBC가 정치지망생들의 영달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15년 10월 26일

MBC 기자협회


신문들도 사설과 기사를 통해 정연국 전 국장의 청와대행을 비판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26일 사설을 통해 현직 언론인이 최소한의 공백 기간이 없이 언론사에서 권력기관으로 직행한 것을 지적하며 언론윤리 실종을 개탄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KBS·SBS 이어 MBC 앵커까지 청와대 직행이라니>에서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가 하루아침에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대변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방송사의 공정성은 의심받아 마땅하다”며 “언론을 권력기관 진출의 통로로 여기는 언론인이나 언론을 권력의 보조수단으로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청와대의 언론관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했다.


한겨레도 사설 <언론윤리 실종된 현직 기자의 잇따른 청와대행>에서 “민경욱 전 대변인이나 정 신임 대변인 모두 뉴스 앵커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소속 방송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권력의 품에 냉큼 안겼으니, 불과 얼마 전까지 그들의 입으로 전한 보도와 주장의 공정성·객관성은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MBC 시사제작국장으로 일하면서 간판 프로그램 ‘100분 토론’을 진행했다. ‘100분 토론’은 그의 사회로 지난 1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남은 과제’,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 방미 이후 한반도 정세’를 토론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23일 “청와대 대변인에 내정됐다”며 MBC에 사직서를 낸 것이다.


정 대변인의 임명 소식을 단신으로 전하면서도 현직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청와대로 직행한 것을 문제 삼은 보도도 있었다.


“전임자인 민경욱 대변인에 이어 현직 언론인을 곧바로 대변인으로 발탁한 것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조선일보 26일자 4면 <靑 대변인에 정연국, 춘추관장에 육동인>)


“청와대가 민경욱 전 대변인에 이어 이번에도 전직이 아닌, 현직 언론인을 임명함에 따라 ‘방송의 공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일보 26일자 2면 <청와대 대변인에 ‘정연국’…야당 “또 현직 언론인이냐”>)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은 정 대변인 임명 소식을 프로필 위주로 간략하게 전했다.


<청 신임 대변인 정연국 발탁…“아는 것 없지만 많이 배울 것”-국민일보 4면>, <청 대변인 정연국…춘추관장 육동인-서울신문 3면>, <청와대 신임 대변인 정연국, 춘추관장 육동인-한국일보 5면> 등이다.


외부 비판에는 아랑곳 않고 현직 언론인을 끌어오는 청와대의 태도도 문제로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변인 자리에 꾸준히 현직 언론인을 임명해왔다.


지난 2013년 2월엔 이남기 당시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를 홍보수석으로 선임했고, 지난해 2월엔 민경욱 당시 KBS 문화부장을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같은 해 6월엔 윤두현 디지털YTN 사장을 홍보수석으로, 올 2월엔 그 자리에 김성우 SBS 기획본부장을 대신 앉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주요 4대 방송사인 KBS와 MBC, SBS, YTN 모두에게서 청와대 인사가 나온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을 통해 “정부가 텃밭의 무 뽑듯 말 잘 듣는 언론계 인사를 골아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며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관계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명제는 이 정권의 안중에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정 대변인 임명과 더불어 한 달여간 공석이었던 춘추관장에 강원 춘천 출신의 육동인 금융위 대변인을 임명했다. 육 춘추관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 논설위원, 국회사무처 홍보기획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금융위 대변인으로 재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