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고 인생에서 꼭 해야겠다고 하는 건 없어요. 그냥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가장 좋은 거라 생각해요. 다만 ‘이건 정말 아니잖아’ 같은 상황이 올 땐 거기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죠.”
해고 8개월차에 접어든 MBC 권성민 PD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밝았다. 지난달 24일 법원이 MBC의 정직, 전보, 해고 결정을 모두 무효로 판결하면서 한시름 놓은 모습이었다. MBC는 곧바로 공식 입장을 내고 “기형으로 난 떡잎은 잘라내야 잡초로 자라지 않고, 피를 뽑아줘야 벼가 잘 자라듯 자성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사와 동료를 조롱하고 비웃은 권성민에 대해 문화방송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처는 해고”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권 PD는 입사 3년차인 지난해 5월 17일 개인 블로그에 MBC의 세월호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단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받은 뒤 그해 12월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로 발령받았다. 이후 비제작부서로 발령받은 자신의 처지를 ‘유배’에 비유하는 웹툰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고 MBC는 “회사를 향한 반복적 해사 행위”라며 지난 1월 30일 권 PD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입사 4년차 막내이자 해고 8개월차에 접어든 권 PD의 심경과 근황을 물어봤다.
- 일단 축하드린다. 승소를 예상했나.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선배님들 사례도 그렇고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 나오고 담담했다. 판결문 나온 거 보니까 저희가 소송을 제기한 의견을 대부분 수용한 부분은 (승소) 결과를 예상하고도 반가웠다. 상식적인 판결이었다. "
- 판결 후 회사 측에서 공식 입장을 내놨는데 봤나.
"사실 그걸 안 읽어보는 게 더 나을 거란 얘기를 들어서 보지 않았다.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내용이긴 했다. 이번 추석에 천안에서 식당을 하시는 부모님들을 도와드리려 내려가 있는 동안, 다른 기사들에서 회사 측이 내놓은 입장의 일부를 발췌해서 써놓은 부분을 보게 됐다. 보면서 불쾌하고 화가 난 게 아니라 안쓰러웠다. 하지만 가족들은 다르더라. 그 글을 보신 아버지는 속상해하시고 화도 많이 내셨다. "
- 해고 이후 어떻게 지냈나. 생활의 변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잘 지내고 있다. 해고 직후 2-3개월은 이슈도 많았고 이런저런 작업 부탁도 들어와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뉴스타파 ‘타파스’라는 브랜드를 제안해서 런칭한 지 3개월정도 됐는데 거기서 객원피디로 한 꼭지씩 참여하고 있다. 또 이번 학기엔 일주일에 두 번씩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영상제작 전공 강의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 "
- 가족들 걱정은 없었나.
"가족들은 이미 입사할 때가 파업 시작할 때라 별로 (해고에 대해서) 말씀을 안 하셨다. 관련 뉴스 팔로우 하고 계시면서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다 알고 계시고 해고가 어떤 맥락으로 일어난 건지 알고 계셔서 특별히 걱정하거나 나무라지 않으시고, 힘이 돼주셨다. 오히려 비상식적인 것에 분개를 더 많이 하고 계신다. 부모님은 항상 제가 결정하고 행동하는 거에 대해서 대부분 믿고 지지해주시는 편이어서 속은 많이 상하시겠지만 티를 내시지는 않는다. "
- 당시 문제가 됐던 '오늘의 유머' 글이나 ‘예능국 이야기’ 웹툰에 대해서 얘기해달라.
"오유 글 같은 경우는 파업이 끝나고 대선이 지난 시점에 계속 회사 내 문화가 바뀌면서 올리게 됐다. 시사교양국이 없어지고 보도국 기자들도 계속 옮겨갔다. 드라마국이나 예능국은 시사적인 걸 다루지 않아서 직접 개입은 없었지만 조직 분위기가 많이 경직되고 옛날보다 자유로웠던 분위기가 없어졌다. 특히 세월호 때 유독 MBC도 그렇고 전반적인 보도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내부에서는 열심히 싸운 선배들이 힘겹게 내부 보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내부 상황을 모르니까 왜 그런 보도가 나가는지 전달이 안 돼 답답했다. 변호나 설득이 아닌 어떤 상황에 있고 이런 보도가 나가게 된 맥락적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다."

- 웹툰 그리는 게 전문가 솜씨던데.
"어렸을 때부터 워낙 이야기 만들고 그 속에 스토리를 입히는 걸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땐 취미로 연습장에 만화나 소설도 많이 만들고 뮤지컬, 연극도 했다. 친구들이 재미있게 봐주니까 신이 나서 했다. 입사 후엔 만화를 그릴 시간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가 정직 끝나고 예능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수원 발령이 나면서 출퇴근도 수월해지고 시간이 많아졌다. PD로서 아무런 콘텐츠 제작을 못하니까 개인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그리운 선배들에게 ‘예능국 잊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어 ‘예능국 이야기’ 시리즈를 그리게 됐다. 예능국에는 재미있는 선배들도 많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종종 캐리커처로 표현을 자주 하기도 했다. "
- 회사에서 해사 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는가.
"정직 6개월에 수원 발령받고 회사에서 저를 미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SNS까지 틈틈이 본다는 얘기도 있었고 개인블로그 등에 문제될 만한 걸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상황을 희화화하거나 자조, 푸념하는 정도만 올렸다. 회사 자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건 일부러 안 넣었다. 표현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애초 그런 목적도 아니었고 재미로 그린 거였는데 해고까지 해서 어이가 없었다. "
- 언제 MBC 예능국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회사에서 항소를 계속 할 예정이라 대법 판결까지 받아야 복직이 가능하겠지만 앞서 이상호 선배 사례를 봐도 대법원에서 이긴다고 해도 예능국으로 복직 시킬지 불투명하다. 지금의 MBC 체제가 많이 개선이 돼야 돌아갈 수 있다. 소송은 2~3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상황이 명료한 편이라 그보다 더 빨리 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 오랜 시간 일을 안 하면 감이 떨어진다는 걱정도 있지 않나.복직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걱정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밖에서도) 콘텐츠 제작을 계속 할 생각이다. MBC 사원이 되기 위해서 입사한 게 아니라, 콘텐츠 제작을 하는 예능PD를 하기 위해서 입사한 것이다. 물론 회사의 시스템 바깥에서 하려다보니 하나하나 다 챙겨야 하고 시간 더 많이 들고 고생스럽다. 예능은 출연자에 의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출연자가 나오지 않으면 웃음을 만든다는 게 맥락이나 상황을 재미있게 셋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데 회사 밖에서 하기엔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인 것 같다. 회사 내에선 아무래도 제약이 있고 콘텐츠 제작자인 동시에 회사원이기 때문에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다 만들 순 없는 실정이다. 뭔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으로서 살고 싶다. "

- 현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예능국에서 해고됐단 자체가 별로 큰 상처가 되진 않았는데 예능프로그램 볼 때 거의 유일하게 힘들다. 저 화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현장들이 생각나고 그립다. 그래도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몇 년 일하면서 어떤 시스템 어떤 연출 디렉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지 경험을 했으니까 굳이 제작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만들어진 영상물을 보면 저 뒤에 어떤 연출 재료들이 오가며 했는지 배우고 있다. 앞으론 더 챙겨볼 생각이다. "
- 다시 복귀해서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지’라는 건 없다. 학생 때부터 이런저런 작업하면서 콘텐츠로 담아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예능의 포맷으로 담아내야 하는지 답을 아직 못 얻었다. 돌아가서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해고 전까지 밤샘 자막하고 편집, 회의하는 과정들이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그 바쁜 와중에 서로 존중하고 조연출도 연차 상관없이 배려해줘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고되긴 했지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까 고민했던 순간이 그립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