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15.09.02 14:12:29
앞으로 TV를 시청할 때 ‘SKT와 함께하는 히든싱어’, ‘갤럭시S6로 보는 무한도전’ 등의 프로그램 제목과 마주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방송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타이틀 스폰서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을 이달 2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언론·시민단체들은 방송프로그램이 공익성과 공공성, 제작자의 독립성과 자율성, 시청자의 시청권이 침해받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방통위 주최로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광화문 KT본사에서 열린 ‘가상광고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제정과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개정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에서 언론·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방통위와 방송 사업자들은 광고재원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개정안의 시행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방통위, 양질 콘텐츠 안정적 제공 주장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개정안은 지난달 6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행정예고됐다. 최성준 방통위원장과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 3인은 공영방송 차기 이사진 구성에 대한 이견으로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 지난 7월20일 공포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 사항을 반영한 규칙 개정안을 보고받았다.
기존 제6조 ‘협찬주명의 프로그램제목 사용금지’가 ‘방송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등 사용’으로 변경됐고, 제5조~제7조, 제8조~제11조를 통해 각각 음성화됐던 협찬을 투명화하고, 협찬고지의 내용·시간·횟수·위치 등 형식적인 규제도 완화됐다. 어린이가 주 시청대상인 프로그램과 보도·시사·논평·토론 등 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에서 사업자들은 협찬주명(로고 포함)·기업표어·상품명·상품 등을 프로그램 제목에 포함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방송프로그램 시작 및 종료 타이틀 고지시, 해당 프로그램 예고시, 프로그램 전 편성 광고시간 방송 프로그램 예고 자막 방송시 ‘SKT와 함께하는 히든싱어’, ‘갤럭시S6로 보는 무한도전’, ‘나이키 운동화 신고 1박2일’등의 제목광고 도입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헌 방통위 방송정책과장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방송프로그램의 해외수출이 늘고 시청자 이익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자의 자율성이 커지면 협찬고지가 늘어날 수 있고 시청자 불편도 커질 수 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고지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광고시간대에만 제한적으로 하도록 했고 투명성 제고를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사후 심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며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제약을 두되 시행하고 있고 중국은 프로그램 내에서도 (협찬주명 고지 등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방송 사업자 환영 “우리 먼저”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방송 사업자들은 입을 모아 환영의 의사를 드러냈다. 이들은 시청권 보호와 방송사들의 생존을 위해 이번 개정안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주 SBS광고팀 부장은 “지상파 방송 전체시청률은 2000년 28.9%에서 2015년 17.9%로 떨어졌고, 특히 광고소구력이 높은 2040세대의 시청률은 12%에서 4.9%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어떻게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것인가. 결국 생존의 문제”라며 “시청권 보호는 (시청자가) 보고 싶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임석봉 JTBC 정책팀장은 “2014년 KBS·MBC·SBS 등 지상파 3사가 각각 455억, 270억, 129억 적자를 봤다고 하는데 다 합쳐도 JTBC 적자폭보다 낮다”며 “비대칭규제의 관점에서 타이틀 스폰서십은 중앙지상파보다는 유료방송과 지역지상파에 먼저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김동현 한국케이블TV협회 정책팀장, 허성진 지역MBC 전략지원단장, 양승진 CBS 정책부장 등 유료방송과 종편, 지역방송, 라디오 방송사업자들 역시 방송광고시장 어려움에 따른 콘텐츠 질 저하와 사업자 특성, 지역사정 등을 이유로 협찬고지 개정을 우선 실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언론·시민단체, 철회·재검토 요구
언론·시민단체들은 방송사들의 이 같은 입장을 납득할 수 없다며 타이틀스폰서십 도입 철회와 재검토를 요구했다. 프로그램 전후로 붙는 광고, 방송 중간 등장하는 가상·간접광고로 지금도 시청의 흐름을 방해받고 있는데 타이틀 스폰서십까지 도입되면 ‘방송의 광고화’가 더욱 심화되고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독립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에서다.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협찬 범위 확대시 방송광고 금지품목 제도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것”이라며 “병원은 방송광고는 금지돼 있지만 상품명 등은 고지할 수 있다면 양악수술, (성형수술) 등은 고지가 가능한 것 아니냐. 정말 굉장히 문제가 있고 허용불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위에선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몰릴 것이 뻔하다. 결국 시청률에 따라 제작비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총장은 “프로그램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해당상품명을 (제목에 고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광고효과를 노출하는 거냐”며 “또 협찬에 대해서는 광고효과를 줄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 협찬주명 등이 제목에 들어가는 게 광고효과를 주지 않는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염성원 평택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협찬고지 효과는 무척 크겠지만 협찬을 하려고 하지 누가 광고를 하려고 하겠나. 기존 광고비용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겠지만 방송사의 수입은 크게 늘 것 같지 않다”며 “타이틀에 협찬주가 들어가면 ‘사실 우린 한 몸이었어’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타이틀 스폰서십 도입은 검토와 보완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인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점”이라면서도 “프로그램명은 방송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여기 상품명이 붙는 것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