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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국내 정치적 필요에 8·25합의"

통일·외교부 출입기자가 말하는 8·25합의 성과와 전망

최승영 기자  2015.09.02 1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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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향·북, 관계 개선 의지 작용
10월 로켓 발사하면 합의 깨질 수도


“8·25 남북합의는 북한이 도발단계에서 합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획한 이벤트라는 점에서 ‘박근혜의 게임’이 아니라 ‘김정은의 게임’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로 극한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가 고위급 접촉 타결로 전환점을 맞은 가운데 종합 일간지 외교부 출입 A기자는 8·25합의에 대해 이 같이 평가했다. 기념비적 순간이 된 남북 고위급 접촉 관련 상황과 소식을 가장 가까이서 접한 외교부와 통일부 출입 기자들은 8·25합의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합의가 유지되려면 남북한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A기자는 “8·25합의는 건축물로 치자면 ‘조감도’에 불과할 뿐 ‘설계도’가 아니고,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아니라 남북관계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며 “북이 10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을 감행한다면 남북 의지에 관계없이 합의가 깨질 수 있고, 국내외적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종합 일간지 외교부 출입 B기자는 “분명 이번 합의는 정부가 잘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략적인 것이었는지 원칙을 내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이 운좋게 맞아떨어졌는지는 의문”이라며 “중국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또 대북방송에 대해 마치 노이로제같은 반응을 보인 북에서 (협의 참석자에게) 미션을 부담스럽게 주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북한 분위기로는 협의 실패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협의자가 4일간이나 자리를 지키게 만들었고,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 정부가 북을 카운터파트로 보고 협상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잔뜩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8·25합의 후 갑작스레 훈풍을 맞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 내용’에 따라 당국회담의 정례화, 이산가족 상봉 등의 조치를 추진 중이며, 북한도 지난달 29일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 실무접촉 제의에 곧장 응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재개는 물론 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변수들이 산재해 있다. 당장 오는 10월10일 당 창건 70돌을 맞은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는 국내외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가 이에 대북제재에 나설 경우 남북관계도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해 온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지난달 25일 중단한 대북방송 확성기도 철거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한만큼 ‘비정상적 사태’가 발생할 때 언제든 재개가 가능하다.


종합 일간지 통일부 출입 C기자는 “우리 정부는 사과를 받아야 했고, 북한은 대북 방송을 중단시켜야 했다. 과거사례를 비춰봤을 때 무리했으면 성과가 나지 않았을 텐데 국내 비판을 감수하고 ‘유감 표명’선에서 잘 조절했다고 본다”며 “하지만 단순히 원칙을 지켜 성사됐다기보다는 북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두고 언론들이 이같은 부분도 평가해줄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외신기자 D씨는 “연평도 포격, 박왕자씨 사건 등과 관련해 ‘북의 사과가 있어야지 무조건 퍼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스탠스고, 날선 안보상황은 ‘안보’이미지가 강한 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됐다. 이번 합의는 양 진영이 각각 국내 정치에 필요해서 가능했던 것”이라며 “이산가족과 관련된 협상에서도 대가성이 아닌 별개의 것처럼 대북 지원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어떤 ‘딜’이 이뤄지긴 어려워 보이고, 박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것도, 김정은이 서울에 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보수 정권이 해놓은 말이 있는데 갑자기 돌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정치적 화해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현 정부가 5·24조치 등을 해제하고 나아가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 관리하다가 말 것”이라고 관측했다.


A기자는 “(이번 합의는)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대외적 활로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임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남북 당국간 대화가 여러 현실적인 조건에 의해 제약 당하고 있는 상황을 일거에 뛰어넘기 위해 군사도발을 통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남측을 회담장에 끌어들이는 극약처방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특히 이번 합의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준비 없이 열린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이뤄진 것이어서 합의내용에 정치적 의지가 충분히 투영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더욱이 청와대가 이번 합의를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얻어낸 승리라고 자평하고 이같은 평가가 국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향후 남북간 협상에서 정부가 북한 측에 뭔가를 양보하는 게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기자들은 남북 고위급 접촉 회담이 시작된 지난달 22일부터 합의가 이뤄진 25일까지 나흘간 담당 출입처에서 버티며 회담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남북의 합의도출이 이뤄진 게 25일 오전 1시에 가까운 시각이다보니 일간지들은 25일자 신문에 해당 소식을 뒤늦게 싣느라 큰 소동을 빚었다. 일부 일간지들은 이날 해당 소식이 빠진 신문을 내기도 했다. 기자들은 이번 합의 과정에서 정부의 정보통제 때문에 취재가 불가능했다며 입을 모았다.


통일부 출입 E기자는 “회담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출입처에 자리잡고 있다가 딱 하루 속옷을 갈아입으러 다녀왔다”며 “취재가 안 되는 게 가장 어려움 점이었다. 이전 회담 때는 진행상황에 따라 중간 브리핑도 있어 보도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는데 그게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통일부 출입 C기자는 “청와대에서 주도하는 접촉이다보니 정보통제가 심했다. 통일부 등에는 입도 뻥긋 못하게 일종의 함구령이 내려져서 회의 시작 시간조차 얘기해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종합 일간지 B기자는 “취재란 건 정보길목을 잡아야 되는 건데 외교안보팀에 접근자체가 힘들었다”며 “사안이 사안인만큼 이해는 되는 부분이지만 기존 회담 때는 적어도 풀기자가 붙어서 최소한의 정보 접근은 가능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