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8월25일을 기점으로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다.
현 정부의 지난 2년 6개월은 불통과 ‘수첩 인사’에 따른 인사실패로 점철된다. 인사검증 부재와 부적합한 인사 교체가 반복되면서 국무총리·장관 후보자들이 잇달아 낙마했다.
실제 김용준(자녀병역 면제·부동산투기), 안대희(고액수임료), 문창극(식민사관 논란) 국무총리 후보자들이 줄줄이 하차했다. 여기에다 헌법재판소장 1명을 비롯해 장관 4명, 공정거래위원장 1명을 포함하면 총 9명의 인사청문회 대상 고위직이 지명 받고도 사퇴하거나 지명이 철회됐다.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서 생긴 ‘인사 참사’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엔 이 같은 인사 참사가 언론계에 전이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신뢰도·언론자유 줄줄이 후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지표가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지난 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34%로 조사됐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정부를 신뢰하는 않는다는 의미인데 조사 대상 41개국 중 26위다.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 역시 27%(2013년 기준)로 조사대상 42개국 중 밑에서 4번째였다.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란 불명예 역시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 4월 발표한 ‘2015년 언론자유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개국 중 아프리카 나미비아와 공동 67위, OECD 34개국 중 30위를 차지했다. 2011년 이후 5년째 ‘언론자유국’지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의 ‘깜깜이식 인사’가 올해부터 언론계에도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언론 정책이 전무하기 때문에 언론계 인사를 통해 언론관 등을 엿볼 수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것은 KBS·방문진 이사진 구성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3일 KBS이사진 11명(여 7명·야 4명 추천)과 MBC사장 선임권을 가진 방문진 이사진 9명(여 6명·야 3명 추천)에 대한 안건을 의결한 가운데 언론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KBS 새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KBS를 이념 전쟁터로 만든 이인호, MBC를 망가뜨린 대가로 전례 없는 3연임에 나선 차기환, 뉴라이트 극우 언론인 조우석, 이명박 찬양방송의 주역 변석찬, 역사전쟁을 통해 편향된 현대사를 설파하는 강규형까지, 도대체 KBS 이사로서 하나같이 자격미달인 자들”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세월호 유족을 ‘떼쓰는 사람들’에 비유한 공안 검사 출신 고영주 현 방문진 감사도 살아남았고, ‘친박’ 김원배 이사 또한 방문진 연임에 성공했다”며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공영방송의 이사는 공익 실현에 적합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무시하고 극우 성향의 인사, 정권 편향적인 인사들의 이사 선임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올해 연합뉴스, YTN, 서울신문 등 정부의 입김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언론사의 사장 교체도 이뤄졌는데, 뜻밖의 인물이 선임돼 언론계를 또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3월 선임된 YTN 조준희 사장이다. 조 전 사장은 IBK기업은행장 출신으로 언론계에 몸담는 것은 처음인데 선임 배경을 둘러싸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차를 맞아 언론사 인사에 적잖은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고 의심되는 부분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이런 개입이 있었지만, 과거보다 인사 예측방향을 가늠하기 더 어려워졌고 비상식적인 면이 커졌다.
현 정부는 집권 이후 지난 정부 때 뽑힌 언론사 사장에 대해 잔여 임기를 보장했다. 앞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참여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에 대해 일괄 사표를 받은 뒤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했고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반면 보수 정권이 연장된 측면도 크겠지만 박 대통령이 공기업·공공기관 임원의 임기 보장에 대한 언급을 심심치 않게 해 왔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 보수매체 임원은 “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임기를 보장한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해왔다”면서 “공기업 등과 달리 언론사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경우 청와대가 개입한 것으로 보고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임기를 보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얽히고설킨 해직기자 문제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대선이 있던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MBC 파업사태를 해결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유력 대선주자이자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박 대통령은 MBC 파업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노조에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은 셈이다.
지지율 하락에 따른 언론 장악 의혹
현 정부의 언론 인사정책 변화 이면에는 ‘콘크리트 지지율’로 일컬어지는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언론계에선 보고 있다. 자칫 손 놓고 있을 경우 내년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마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정권 초기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지지율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등을 거치면서 올해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이 매주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무평가에서 올해 1월 4주차에서 긍정적인 답변은 29%를 기록한 데 이어 2월 1주차와 6월 3주차도 긍정적인 답변은 30%를 밑돌았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30%대를 밑도는 결과가 3번씩이나 나오는 등 소통 미흡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대처 미흡 탓에 긍정적 답변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소통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바뀔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전망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올 초 신년기자회견 이후 7개월 만에 대국민 담화를 했는데 일방적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4차례 대국민 담화가 열렸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특히 국정원의 불법 해킹을 둘러싼 의혹과 메르스 사태 책임 문제, 세월호 진상조사,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의 친일 망언, 국회의원 정수 조정, 롯데그룹 사태 등 산적한 현안이 많았지만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낸 셈이다.
이와 달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09년 1월 취임 후 지난해까지 총 121회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는 1개월에 1.73회를 연 셈이다.
한 보수신문 편집국장 출신 언론인은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에도 정치부장은 물론 편집국장도 만나지 않았다”면서 “물론 그쪽에선 부탁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과거부터 소통 의지는 부족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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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공영방송 통제 의도 드러내”
[인터뷰]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달리 언론자유를 제약하지 않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좋은 공약을 내놓고도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외에 지킨 게 없다”며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야당 안보다 훌륭했던 검찰개혁 공약 등이 없었던 일이 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상돈 교수는 KBS이사, 방문진 이사 선임을 앞둔 지난달 27일 시사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MBC파업 사태를 해결하기 약속했다가 이를 외면했다고 증언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은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약속은 없었던 일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가 이러한 증언을 한 이유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이 중차대한 이슈임에도 국민적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KBS와 방문진 이사 선임 문제가 다른 정치 현안에 묵혀 관심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며 “박 대통령 대선 공약 중에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꿔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KBS와 방문진 이사는 지금까지 대부분 언론계 인사들이 맡아왔는데 현 정부 들어 이런 상식들이 무너졌다”며 “공영방송을 정권이 통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KBS와 방문진 이사는 언론과 방송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는 인사가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간 ‘박근혜 정부’ 평가에 대해 “대선 말기 때 불거졌던 국정원 대선개입,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혔는데 이 이슈가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며 “또 인사 실패로 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해 대단히 실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인사 실패가 ‘국가적 재앙’을 낳는 씨앗이 됐다는 점이다.
그는 “자격 없는 장관을 임명하다보니 위기관리를 하지 못했고 그 여파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이어졌다”며 “박 대통령 취임 이후 2년6개월이 덧없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MBC 파업 해결 약속뿐 아니라 증세 없는 복지,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공약파기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은 너무 쉽게 약속하는 반면 지키는 것에 대해선 큰 부담감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은 자신을 ‘신뢰와 원칙’을 지닌 정치인이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엔 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