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온 나라가 태극기 물결로 출렁일 때 새삼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뉴스 하나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정부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뢰해 각 국가별 국민 1000명씩을 설문조사해 공개한 보고서 내용으로, ‘정부를 신뢰합니까’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 34%만이 ‘신뢰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대상 42개국(회원국 34개국, 비회원국 8개국)의 평균인 41.8%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라고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정부의 초기 대응이 실패한 메르스 사태, 부처간 소통부재를 보여준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폭발사건,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과 직원 사망 사건 등을 떠올려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 논어(論語)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는 글귀를 떠올려 봅니다. 행정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국민의 믿음을 얻기 위한 솔직한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 뉴스를 접하면서 정부만을 탓할 수 없는 언론인으로서의 불편한 자괴감도 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 언론은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과 사명을 제대로 수행해 왔을까요?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해 권력을 감시 비판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나홀로’ 대국민 담화에 노트북 컴퓨터도 없이 빈 손으로 들러리 선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모습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어쩌면 언론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정부의 그것보다 더 낮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경에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리 언론이 침묵과 왜곡을 일삼으면서 국민의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 기자들은 국민들로부터 ‘기레기’라는 조롱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지상파 텔레비전의 유명 앵커로 활약하다 지금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언론계 선배의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안 보면 세상을 알 수 없고, 보면 세상을 잘못 알게 되는 게 미디어 세상의 딜레마”라고. 물난리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이 없듯 정보의 홍수시대에 생수와 같은 뉴스가 없는 부끄럽고 창피한 우리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언론은 항상 국민과 함께 해왔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한 공공 저널리즘의 구현을 위해 매의 눈으로 부정한 권력을 감시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으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언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다기 보다는 우리의 반성과 실천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뜻해지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두터워질 때까지 우리 기자들은 올곧게 서서 양심을 말해야 합니다. 더욱이 반세기 전인 1964년 8월17일. 권력에 항거해 언론자유 수호의 기치를 내걸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한국기자협회를 만들었던 선배 기자들의 헌신과 열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불의(不義) 앞에 당당했던 선배 기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는 더 이상 나약한 월급쟁이 저널리스트여서는 안 됩니다. 배고파도 풀을 먹지 않은 호랑이 같은 기자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이유입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화, 경제성장의 바탕에 언론의 역할과 기자들의 소명이 자리했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제 한국기자협회 창립 51주년 기념일에 다시 한 번 우리 언론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믿음 속에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합시다. 기쁠 때나 슬플 때, 분노할 때도 항상 국민과 함께 하는 언론이겠다고 약속합시다.
“믿으면 설명이 불필요하고, 믿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경구(警句)를 가슴에 담고, 말(言)이 아닌 실천으로 국민의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치가 아닌 언론의 입장에서 ‘民無信不立’은 ‘언론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인 것입니다.
2015년 8월17일 한국기자협회 박종률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