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이사 추천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선임을 연기했다.
당초 31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던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 및 임명 건이 돌연 미뤄진 것은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에 대한 기준 마련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여당 추천 상임위원은 이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31일 전체회의에서 각각 8월 말, 8월 8일 임기가 끝나는 KBS와 방문진의 이사추천·임명을 의결할 계획이었지만 “일부 안건에 대해 방통위원들 간 협의, 정리해야 할 사안이 남아있어 제40차 전체회의를 연기한다”고 30일 밝혔다.
야당 추천 김재홍 상임위원은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오늘 협의가 잘 돼서 조율이 이뤄지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장기화되거나 무기한 연기도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않고 있어서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9일 야당 추천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사 선임시 최소한의 인선 기준과 원칙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구체적인 인선을 위한 절차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두 상임위원은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반영하되 특정 후보자의 ‘3연임’을 금지해야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이날 “특정인의 이사 3연임(9년)은 전례가 없을뿐더러 이사직 독점으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해치고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해야 한다”며 “비상임 이사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인사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고루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사진으로 거론되는 인물군 중에선 차기환, 김광동 현 방문진 이사가 8기(2009)와 9기(2012) 방문진 이사를 지냈다. 이번에도 이사로 선임될 경우 전례 없이 세 차례 연임을 하게 된다. 차기환 이사는 KBS이사에 공모했고, 김광동 이사 역시 MBC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상임위원은 이 자리에서 정파적 나눠먹기 인선 반대와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 공공성 및 공정성 구현의 적임자 선임의 원칙도 제시했다. 이들은 “정파적 나눠먹기 인선은 더 이상 안된다”며 “공영방송의 이사 추천비율을 여야 정치권이 나누어 가지는 방식이 관행화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법령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적임자 인선이라는 인사원칙에도 걸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 공공성 및 공정성 구현의 적임자를 선임해야 한다”며 “공영방송 내·외부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편성·제작의 자율성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동이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선임하거나 연임시켜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공영방송사의 이사 자리를 KBS 7대4, MBC방문진 6대3, EBS 7대2 등으로 여야가 각자 몫에 따라 나눠 갖는 현실과 관련 있다. 이사 후보자의 자격이나 적임여부보다는 정파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진이 결정되다보니 해당 이익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공영방송의 공적책임, 공공성, 공정성이라는 가치 구현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의미다.
실제 이사진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 KBS 이인호 이사장과 MBC방문진 차기환, 김원배 이사, 고영주 감사 등은 수차례 정파적 행동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 온 이들이다. 연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KBS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2월 KBS다큐 ‘뿌리 깊은 미래’의 역사관을 문제삼아 불만을 제기했고, 이달에는 KBS ‘뉴스9’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를 비판하며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차기환 방문진 이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비하 등 반인륜 극우 사이트 ‘일베’에서 확인되지 않은 게시물을 퍼나른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김원배 이사는 MBC대주주인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으로 목원대 총장시절 교내 수목 불법매각 의혹을 받아오다 최근 검찰로부터 최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고영주 감사는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로 최근 피해자들이 33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자 “사법부가 좌경화됐다”며 비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해 각각 ‘종북인사’, ‘공산주의자’라는 색깔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세월호 관련 MBC오보를 적극 방어했다가 정부 두둔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 상임위원은 인선절차가 아직 방통위에서 진행 중인데도 이사 일부가 확정된 것처럼 명단이 돌고 있다며 이는 사실과 다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러 ‘설’이 나돌면서 방송사 구성원들과 언론단체들은 특정 인물에 대한 불신임 입장과 함께 깊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KBS노동조합은 30일 ‘김영해, 차기환은 절대로 KBS에 들어올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1)정치중립성 (2)도덕성 (3)전문성 (4)각계대표성 등의 이사선임 요건을 훼손할 우려가 큰 김인규, 정연주 전 사장 측근 6명의 선임을 총력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KBS노동조합은 성명에서 “이번 이사 선임은 정치인이나 대선참모의 KBS 이사, 사장 지원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방송법 개정안이 발효된 이후 첫 적용 사례여서 그 의미가 어느 때보다 크다”며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정치중립성을 훼손하는 인사들이 KBS이사회에 한발짝도 들어올 수 없도록 KBS노조는 죽을 힘을 다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31일 성명에서 이사 선임의 무기한 연기는 정상화로 가는 진통이라며 신중한 선임을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누가 공영방송의 이사가 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단지 해당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영방송의 절대적 위상을 볼 때 우리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새 생명을 낳는 진통처럼 요란해야 한다. 더더욱 요란해야 한다. 국민모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누가 이사로 선임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야 정파를 떠나 공정하게 각계각층의 대표자를 중심으로 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적임자 선임하자. 이것이 원칙이다”라며 “한국사회는 갈수록 다양한 목소리를 막는 역류사회로 가고 있다. 이 흐름을 다시 바꾸는 시발점이 지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