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영 기자 2015.06.16 23:14:16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언론의 관련 보도가 급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35번째 환자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오고, ‘공포’ ‘패닉’ 등 국민 불안감을 키우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는가 하면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 등 주요 이슈는 가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2012년 12월 공동 제정한 감염병 보도준칙에 따르면 감염병에 대한 보도는 국민들의 생활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그 어떤 다른 보도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보도준칙도 국민에게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보도에 있어서 이런 준칙들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단독]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 지난 11일 오후 6시33분경 한국일보가 보도한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 기사는 오보로 판명됐다. 한국일보는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째 환자의 뇌 활동이 모두 정지돼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가족들이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며 12일자 신문 1면 톱기사에서도 이를 다뤘지만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다. 결국 한국일보는 13일 ‘사과드립니다’에서 “보건복지부와 35번째 환자를 치료 중인 서울대병원은 그가 뇌사 상태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며 “본보는 다각적인 취재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으나,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고 사과했다.
11일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란 자막을 뉴스 중간에 내보낸 YTN도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구체적인 팩트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가 이뤄진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오보는 큰 파장을 낳을 수밖에 없다. 38세의 젊고 건강한 의사가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는 보도는 젊고 면역력이 좋은 사람은 쉽게 메르스를 이겨낼 수 있다는 상식을 깨고 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11일 보도가 나온 시점부터 SNS 상에서는 사망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며 불안감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남보다 빨리 보도해야 한다는 욕심에 사실 확인이 소홀했던 것 같다”며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사실 확인에 대한 신중함과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 내·외부적으로 특별한 징계도 없고 문제제기 없이 지나가기에 앞으로도 이런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염병 보도 준칙에는 감염병의 규모나 증상, 결과에 대한 과장된 표현도 자제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털에 메르스 기사를 검색하면 제목에 ‘메르스 공포’ ‘메르스 패닉’이 붙은 기사가 바로 나온다. 포털 뿐만이 아니다. 종합일간지에서도 ‘메르스 공포 확산’ ‘메르스 공포’를 지면 제목으로 쓰는가 하면 ‘메르스 공포…한국경제 덮치나’ ‘우려가 현실로…확진환자 발생 인근 지역 패닉’ ‘메르스 공포 서울 상륙…시민들 패닉’ ‘메르스 대란 조짐’ 등의 기사 제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언론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일정 부분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질병 관련 보도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인데 지나치게 국민 불안을 부추기는 양상으로 가는 것 같다. 메르스 사태에 편승해 제목 장사를 하지 말 것은 물론 언론이 자기반성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 보도가 언론을 뒤덮고 있는 탓에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검증이나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기사도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1~16일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 종합일간지 9개를 조사한 결과 성완종 리스트 검찰 수사를 보도한 언론사는 하루 평균 3곳에 불과했다. 신문사 6곳에서는 성완종 리스트 관련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1~5면 안에 성완종 관련 기사가 다뤄진 적도 6차례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검찰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을 소환 조사한다는 스트레이트 기사였고 부실 수사에 대한 지적 등 분석이나 기획 기사는 1~2개에 불과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기사의 경우 인사청문회가 실시된 8~10일(보도는 9~11일) 보도를 살펴본 결과 평균 7번째 면 정도가 돼서야 관련 기사가 나왔다. 1면 톱기사로 처리된 적은 10일자 한겨레밖에 없었고 모두 정치면이나 종합면에서 청문회 쟁점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과 후, 황교안 후보자에 대한 집중분석을 시도한 곳은 한겨레밖에 없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메르스 뉴스가 가장 중요한 이슈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론은 국민이 원하는 뉴스뿐만 아니라 필요한 뉴스도 제공해야 한다”며 “메르스 보도만 앞에 배치할 것이 아니라 주요 이슈를 앞에서 전반적으로 다뤄주고 세부적인 것은 뒤에서 짚어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물론 언론이 메르스 보도에 있어서 실수만 범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보다 앞서 정보를 공개해 국민 불안을 해소시키는 한편 국민들이 궁금할 만한 점들을 Q&A 형식으로 엮어 자세하게 보도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메르스 생활 속 예방 수칙과 핫라인 정보를 주기적으로 내보내고, SNS에서 떠도는 내용들의 거짓과 진실을 판별하기도 한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기자는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고 난 후부터는 기자들이 기존 데이터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다니며 취재를 하고 있다”며 “다만 언론사별로 메르스 사태를 정파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대선지지도와 연결하는 식의 보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