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현재, 한국의 메르스 감염자는 95명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격리자는 2892명, 그 중 감염의심자는 1969명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감염자, 격리자가 단시간에 발생하게 된 것은 정부가 초기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감염의심환자는 방치되었고 자가 격리자는 통제되지 못했다. 병원 인력에 대한 보호지침은 미비했고 그로 인해 감염은 의료인에게도 확산되었다.
감염이 확산되는 와중에 정부는 정보를 축소, 은폐했다. 메르스의 전파 경로는 전염력이 낮은 비말전파인지, 전염력이 높은 공기전파인지 불분명하며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정부는 공기전파 가능성을 배제하고 ‘전염력이 낮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또한 정부는 감염자가 발생한 지역과 병원, 거쳐 간 병원, 국가지정격리병상을 보유한 병원 명단을 은폐했다가 혼란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개했다. 메르스 감염을 다른 호흡기 질환과 감별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는 감염자와의 접촉이 있었는지 여부다. 일선의 의사들이 메르스 발생 병원을 알지 못하면, 메르스 의심 환자에게 문진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메르스 확산을 더욱 부추겼다.
정보를 축소·은폐하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사태를 악화시킨다. 영국에서 확산된 인간광우병과 중국에서 확산된 사스(SARS)가 그 예다. 영국에서 1986년 광우병소가, 1996년 인간광우병이 발견되었다. 그 10년간 사회적으로 광우병소가 인간광우병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광우병에 감염된 소를 즉각적으로 폐기하지 않았고 인간에게 감염될 위험을 부인했다. 결국 2000년에 필립스 보고서가 공식 제출되면서 영국 정부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왜곡하고 부실한 대응을 했음이 밝혀졌다. 이후 영국에서만 160여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겼고 인간광우병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2002년 중국에서 사스 사태 발생 당시 사회적 상황은 지금 한국 상황과 닮은 점이 많다. 당시 중국은 몇 달 동안이나 사스 발생을 은폐했다. 그로인해 중국 사회는 ‘괴질병’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혼란 그 자체였다. 이때 중국 정부의 대응은 ‘괴소문’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사스가 확산되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한 양심적인 중국 의사에 의해 중국 정부의 사스 은폐 사실이 폭로되었다. 결국 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초기대응은 늦어졌고 중국과 홍콩에서 하루 최대 100여명이 발생했다. 이후 사스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감염자 8000여명, 사망자 800여명이 발생했다.
정부의 정보 축소·은폐는 언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불확실한 정보와 일부 전문가에게만 의존하는 보도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 결과 메르스 감염자 발생 초기 주요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전염력이 낮다는 것, 대유행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불확실한 정보였음은 메르스 감염자가 확산됨으로써 증명되었다.
감염병에 관한 기사는 국민의 생활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는 ‘감염병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감염병 보도는 정확한 사실만 제공해야 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해야 하며 자극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도록 명시되어 있다.
2004년, 사스가 재발하자 중국 정부는 새로 발생한 환자에 대한 소식과 당국의 조치 등 세세한 내용을 투명하게 보도했다. 덕분에 2003년과 달리 사스 관련 소문들도 거의 없었고 시민들도 별다른 위기의식이나 동요가 없었다. 정부가 정보를 축소·은폐했을 때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을 해외사례, 현재 상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확산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언론은 지난 세월호 사태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당시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 추측성 기사를 양산하면서 정확한 정보 전달에 실패했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원칙에 입각한 기사를 쓰려는 언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