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남 기자 2015.06.10 13:02:18
#1. MBN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는 메르스 자택격리 상태를 점검하는 취재를 갔다가 격리 대상자가 갑자기 문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자택 격리에 들어갔다. 취재원인 격리대상자가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아 지난 7일부터 정상 근무를 하고 있다.
#2. YTN 취재진은 확진 환자가 아닌 확진 환자를 접촉한 ‘밀접 접촉자’를 취재했지만 예방 차원에서 자가 격리대상자가 됐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일파만파로 퍼지는 가운데 취재진의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전 국민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주요 매체들이 앞 다투어 보도를 하고 있는 데 비해 취재진의 안전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다행히 메르스를 취재한 취재진 중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일부 취재진은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KBS, YTN, MBN 등 일부 방송사와 조선, 한경 등 일부 신문사는 메르스 취재 이후 예방 등을 위해 일부 취재진을 자택격리 조치했다.
이런 일이 흔치 않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마저 없다보니 웃지 못할 ‘촌극’이 발생한 것.
한 방송사 사회부장은 “기자나 언론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매뉴얼을 갖춰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선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이런 매뉴얼이 없다보니 기자들이 의심환자 가족 등을 접촉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화재, 육상·해상사고, 항공사고, 원전사고 등 인재,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와 함께 급성 감염병, 인수공통전염병, 신종인플루엔자,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도 재난에 해당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취재진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적절한 안전 조치 등이 강구돼야 한다.
문제는 취재 현장에서 취재진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는 점이다. 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데다 언론사 간 치열한 경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신문사 고위 간부는 “회사 게시판에 대처 요령 등을 공지했지만 개인적으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불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취재 기자들한테 취재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불’ 가리지 않고 취재현장을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지적이다. 현장에 투입되는 기자들에게 안전 장비 지급과 함께 취재 준칙 등을 통해 최소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중앙일보 출신의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는 “아직 감염 루트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들도 장갑, 마스크 외에 고글 등 방호 장비를 갖춰야 한다”며 “2003년 발생한 대만 구제역의 경우 과열 취재경쟁 탓에 기자들이 구제역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는 대만과 같은 사례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더구나 기자들이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경우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는 보도준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메르스와 관련된 취재준칙이나 수칙을 마련한 언론사는 KBS, 중앙일보, JTBC 등 손에 꼽힐 정도다.
중앙·JTBC는 감염준칙 부재와 무모한 취재로 빚어진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공동 취재준칙을 마련했다. 중앙·JTBC 공동 취재준칙에는 △메르스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최대한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한다 △중동 등 발생지역 취재를 미루고 국내에서는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 등 현장에 가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가야 할 경우 방역 마스크를 쓰고 감염자가 있던 병실 등 현장은 피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KBS 역시 병역 마스크 착용을 비롯해 장갑 착용을 권고하고 대면 취재 대신 전화 취재 등 취재진 안전 수칙을 마련해 공유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 언론사들은 마스크나 장갑 착용 등 개인위생 관리를 당부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기존 취재준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큰 ‘탈’이 없고 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취재준칙을 만들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본의 NHK는 각종 재난재해가 날 때마다 취재 과정을 기록하고 보도준칙을 꾸준히 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NHK 산하 방송문화연구소에선 매년 관련된 세미나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재난대비 훈련이 한두 차례 연습으로 체화될 수 없듯이 재난보도준칙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반복 학습과 현장 적용 등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연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부)는 “지난해 기자협회가 주도가 돼 재난보도 대준칙을 만든 것은 각 사가 재난이 일어날 때 대준칙 아래 각사에 맞는 준칙을 만들라는 의미”라면서 “하지만 우리 언론은 보도준칙에 대한 의식이 결여돼 있고 교육 의지마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 종편 등을 포함해 대부분 언론의 보도형태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갈등을 조장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며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 얻은 값비싼 교훈이 잊혀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