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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행사 한달 평균 15개…협찬·섭외 기자에 떠넘겨

광고·구독료 수입 급감에
포럼등 수익사업 눈 돌려
공급 넘치고 베끼기 급급
주요 인사들 모시기 동원

강아영 기자  2015.05.26 21: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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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기자는 몇 달 전 출입처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선배가 기자실에서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선배는 취재가 아닌 회사 포럼 참석 독려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저희 회사 포럼 하는 것 아시죠? 참석 부탁드려요.” 선배는 기업체 명단과 담당자 이름이 적힌 리스트에 동그라미, 세모, 엑스로 표시를 해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A기자는 “저 정도까지 해야만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면서 “기사 스트레스만으로도 벅찬데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우후죽순 열리면서 명사 섭외, 청중 모시기 등 가욋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주최 포럼이나 콘퍼런스 등이 늘어나면서 기자들이 행사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7개 언론사의 행사 개최수를 조사한 결과, 1년간 개최된 행사는 184개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8개로 가장 적고, 한국경제가 50개로 가장 많았다. 7개 언론사만 추산해도 한 달 평균 15개의 행사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 외 종합일간지, 경제지, IT지, 방송사, 종합편성채널까지 합산하면 행사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공익 목적의 세미나, 토론회, 발표회, 공연 등도 포함됐지만 포럼 등 기업체 협찬과 연결되는 수익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언론사들이 이처럼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는 주 수익원인 광고·구독료 수입이 급감하고 있어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4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광고수입은 매년 하락세를 나타내 2013년에는 전년 대비 5.2% 하락했다. 한국ABC협회가 발표하는 발행부수와 유료부수 역시 매년 감소해 2013년 일간지 상위 20개사의 발행부수는 전년 대비 5.2%, 유료부수는 4.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추세에도 경제지들은 대부분 매출이 증가했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10년간 신문·방송·통신 20개사의 경영실적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머니투데이를 비롯해 헤럴드경제,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 경제지 대부분이 플러스 성장률을 보였다. 심영섭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경제지들이 포럼, 콘퍼런스 등 신문사업 외적 영역에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라며 “이제 종이신문을 팔아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콘퍼런스, 시상식, 포럼, 엑스포, 마라톤 등의 행사는 수익 창출 외에도 언론사 브랜드와 인지도를 강화하는 데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도 나도 행사를 개최하면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자만 넘쳐나는 탓에 ‘행사를 위한 행사’가 열리고 행사를 베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경제지 B기자는 “기업들이 초반에 단순히 광고를 주는 것보다 언론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협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차별화된 기업 홍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가면 갈수록 행사가 많아지니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잦은 언론사 행사 주최가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기업들이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런 참여는 미풍양속 수준의 단순한 성의 표시 차원이 아니라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기업에게 안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지 D기자는 “기업 홍보 담당자들을 보면 하루 종일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론사 행사에 얼굴을 비추러 다니기 때문”이라며 “어떤 기업은 도와줄 테니까 후원사에 이름을 넣지 말라는 경우도 있다. 다른 언론사가 알면 불나방처럼 달려들기 때문에 쉬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선 기자들이 행사에 따른 섭외와 협찬에 동원되는 일이다. A기자는 “포럼 등 행사를 앞두면 기자들은 암암리에 출입처 임원과 저녁 약속을 잡는다. 부장이 협찬을 ‘땡기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며 “홍보하는 사람들은 운만 띄워도 어떤 자리인지 안다. 씁쓸하기도 하고 ‘깡패짓’하는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섭외도 기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국회의원, 장·차관, 정부기관장 등 ‘급’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해야 협찬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해당 부처 출입기자들은 섭외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경제지 E기자는 “회의 때마다 ‘너 출입처에서 누구 오냐’며 쪼임을 당한다”며 “기자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기사보다 섭외가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글로벌포럼 등 해외 명사를 초빙할 때는 편집국 인원이 총동원되기도 한다. B기자는 “기획팀이 따로 있기는 한데 섭외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기자들이 나서곤 한다”며 “매년 새로운 인사를 모셔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막중할 뿐더러 몇 달이 걸려 포럼 준비를 끝내면 또 다른 포럼이 기다리고 있으니 진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언론사 주최 행사에서 장관상, 총리상, 대통령상 등을 수여하기 위해 정치부 기자들이 동원돼 로비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B기자는 “권위 있는 상들은 각자 나름의 심사 기준이 있어 해당 부처에서 허가를 해줘야 상을 수여할 수 있다”며 “상 시상 여부에 따라 기업 참여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반면 언론사 행사에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수요를 예측하고 체계적으로 진행하면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지 F과장은 “기업의 니즈와 부합하는 행사를 치루면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면서 “문제는 대부분의 행사들이 주먹구구식, 묻지마식 행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D기자도 “최근에 기업 홍보팀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연 적이 있다. 독자들이 필요로 했던 세미나라 의미가 컸다”며 “서로 경쟁하다시피 매달, 분기별로 행사를 여는 것이 문제다.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제대로 만들어 1년에 한 번 정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