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혼한 A씨는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을 치면 과거 시부모상 ‘부고 기사’에 본인 이름이 뜨는 것을 보고 혹시 자식들이 재혼한 사실을 알까봐 불안해 한다.
#. 부도가 났던 B기업은 주주들이 힘을 합쳐 회사를 살렸지만 인터넷에 기업 이름을 검색해 보면 과거 당좌거래가 정지됐다는 기사가 여전히 뜬다.
#. C가수는 ‘자신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뒤 자신과 관련된 언론 기사가 뜰 때마다 이 같이 내용이 나와 일일이 대응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가 추진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웹 사이트 또는 포털사업자의 검색 서비스나 복제 등을 통한 노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지난해 5월 유럽 사법재판소가 처음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과거보다 정보의 복제와 전달이 쉬워진 데 비해 피해를 본 개인에 대한 구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잊혀질 권리를 마냥 인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칫 알 권리, 표현의 자유 등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과거 기사에서 더욱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온라인 부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동아, 조선 등 일부 신문사의 1990년 이전 과거 기사가 담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나 ‘부고 기사’ 등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처리된 기사에서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뉴스 엄호동 온라인편집 부국장은 “익명으로 처리가 안 된 네이버 과거 기사 디지타이징(전산화)이나 부고 기사 등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담당 데스크가 사실관계 등 정황을 살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잊혀질 권리가 자칫 ‘범죄세탁’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잊혀질 권리를 앞세워 과거 범죄 사실을 지우려는 시도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인데, 법제화될 경우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글의 독립 자문위원회의 경우 지난 2월 잊혀질 권리를 인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정치인, CEO, 유명 연예인, 종교 지도자, 스포츠 스타, 예술가 등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반면 개인의 내적·성적 정보, 개인의 금융정보, 사적 연락처, 미성년자에 대한 정보, 오류 혹은 부정확한 정보나 해를 끼치는 정보 등에 대해선 정보 삭제를 용이하도록 했다.
특히 잊혀질 권리는 언론자유와 상충될 수 있기 때문에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구글에 따르면 삭제 요청 대상의 99%가 언론기사였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5일 ‘잊혀질 권리 보장을 위한 세미나’에서 “언론사 기사를 제외한 게시글, 복제글, 링크 동영상 등의 검색결과에 잊혀질 권리를 우선 적용하자는 게 학자들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 언론사들은 기사에 나온 피해자나 가해자의 잊혀질 권리에 대한 요청을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이나 기사 팩트가 잘못된 경우만 수용하고 있다”며 “사실상 데스크가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엇보다 인권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 국민일보는 최근 창간(1988년) 당시 시작한 기획시리즈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등장한 주인공의 기사 삭제 요청을 받아들였는데, 알 권리보다 잊혀질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시시콜콜한 기사마저 공인이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가 무시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프로야구 한 투수가 1군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과거 스캔들이 있었던 아나운서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 것은 알 권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한겨레 김용철 소셜콘텐츠 팀장은 “잊혀질 권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인권”이라며 “반면 공인들의 경우 역사의 기록이라는 차원에서 일반 사람들과 다른 잣대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